사회안전 국제표준화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11월16일~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복스버그에서 열렸던 사회안전총회 결과 이르면 올해 말 사회안전 국제표준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 정부와 재난관리책임기관, 민간기업의 대응과제에 대해 살펴본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ISO/TC223 재난관리 총회는 지난 2006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0개국 68명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회의를 연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8회에 걸쳐 열렸다.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 자국 ‘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해 운영 중인 방재선진국도 ‘국제재난관리표준’ 제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다. 이 같은 국제적인 활동에 힘입어 지난 2008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 ‘국제사회안전표준’으로 ‘ISO22399’가 제정됐다.

한국도 사회안전 표준 제정
우리나라 기술표준원은 2008년 11월 제정된 ‘국제사회안전표준(ISO22399)’의 한글화 작업을 거쳐 ‘KS A ISO/PAS22399’를 국가표준으로 고시했다. 스웨덴 비상관리사무국의 상임고문이며 ISO/TC223 의장인 크리스터 쿰린(Krister Kumlin)은 “표준화된 (의사소통)채널은 위기관리에서 대응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유관부서 협력을 간소화시켜 역량을 집중시킬 수도 있다”며 “앞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는 물론이고 글로벌회사와 감독기구, 기관과 기관 사이에도 더 많은 정보 교류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자체 재난관리 표준을 가지고 있는 미국, 영국, 일본 등도 국제표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ISO/TC223 총회에서 미국, 영국, 독일, 싱가포르 대표들과 협의한 결과 ISO 표준 제정에 맞춰 미국은 ANSI/NFPA1600 규정을 도입하기로 했다. 독일은 ISO/PAS22399를 기준으로 사회안전 자국표준을 준비중이다. 영국도 BS25999를 ISO 규격에 맞는 자국 표준으로 개정할 뜻을 밝혔다. 특히 싱가포르는 이미 국가재난표준 준비를 완료했으나 ISO/22399 제정에 따라 국제표준에 부합하도록 바꿀 계획으로 알려졌다.

ISO에서는 국가재난관리표준과 기업재난관리표준을 분리할 수 없다고 판단해 같이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52여개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모여 재난관리 국제표준을 개발하고 있는데, 서남아시아 쓰나미 발생 후 발표된 분석보고서에는 ‘국제구호에서의 국가간 조직간 효율적 협력’, ‘재난정보 전달 및 경보체계’, ‘재난관리 요소기술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자는 취지에서 국제재난관리표준이 제정된 것이다.

표준은 시장 독점할 무기
한 국제표준 전문가는 국제 사회에서 ‘표준’은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표준을 선점하면 엄청난 이익을 챙기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뒤치다꺼리만 해야 한다. 사회안전 표준도 마찬가지다. 정종수 사회안전학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는 지난 IMF 때 수많은 기업들이 외국 컨설팅 기관으로부터 표준 인증을 받아 국부가 유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사회안전 분야에서도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그 때와 같은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표준은 기업에게 ‘특허’가 될 수 있다.

세계 시장은 표준으로 통합되는 중이다. 무역에서도 자연스레 표준이 필수 요건이 됐다. WTO/TBT 협정에 의해 의무적으로 수용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선진국은 이미 표준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통해 그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은 휴대폰에서 유럽에 뒤쳐진 후 디지털 TV로 승리하기 위해 표준에 총력을 기울여 유럽과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PC시장도 마찬가지다. 표준에 성공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은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한때 잘 나갔다고 표준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표준경쟁에 이긴 마이크로소프트는 계속 표준에 투자해 전 세계 운영체계 시장을 석권했다. 반면 한때 시장을 주도하던 인텔은 도산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다. 표준은 이처럼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와 함께 경쟁자가 자동 소멸토록 하는 힘도 가졌다. 사회안전 표준도 마찬가지다.

사회안전에 대한 국제표준이 개발됐고, 우리나라도 2008년 12월18일 사고대비 및 운영연속성 관리 표준(KS A ISO/PAS22399 Societal Security)으로 제정했다. 앞으로 계속 관련 표준이 개발되기 때문에 ISO9000시리즈처럼 인증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움직임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정부부처와 기업을 빼곤 사회안전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경우 내각부가 중심이 돼 사이렌, 표시, 알람 등 공공경보에 대한 표준 개발을 위해 국제워크숍을 유치하는 등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정부의 전략적 대응 필요
ISO TC223에서 검토 중인 국제표준은 2010년 하반기부터 제정이 예상되기 때문에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미국, EU, 일본 등은 표준을 위해 정부가 주도적 역할과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도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통합인증과 함께 CCC마크를 강제 인증화했고 표준개발을 10대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말부터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차원의 지원체계를 수립했다.

IPOCM(Incident Preparedness and Operational Continuity Management 사고대비와 업무연속성관리) 개념을 제안하고 규격개발을 주도한 미국의 마크 시갈(Marc H. Sigel) ISO/TC223 사회안전 워킹그룹 의장은 “표준은 법규가 아니며 법규는 표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각 나라마다 버전이 다른 사회안전 표준을 일원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국가 역시 ISO/TC223 사회안전을 통해 제정된 국제표준을 바탕으로 운영연속성계획(BCP)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국제표준 전문가는 정부는 하루 빨리 제도를 정비하고 기업은 사회안전 교육 등을 통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재난관리책임기관은 공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재난관리책임기관인 공기업이나 글로벌기업들은 국제표준화 움직임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계화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2회씩 개최되고 있는 ISO/TC223 사회안전 총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국제표준화 능력은 통계상으로 세계 10위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IT분야를 비롯해 신성장동력인 재생에너지와 같은 녹색성장 분야에서 다양한 국제표준 개발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세계는 조금이라도 자국에 유리하도록 국제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사회안전 분야도 마찬가지다”며 “우리 정부도 이와 같은 움직임을 직시하고 사회안전 분야 전문가 양성을 위한 지원제도 마련 등을 위해 정책적 역량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표준은 전 산업에 걸쳐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교육과 훈련을 통한 전문가 양성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사회안전에 대한 교육은 일반적인 교육과 다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어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국내에선 아직 대학에 사회안전 교육과정이 개설되지 못했다. 따라서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와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기관이나 단체에서 교육을 맡아야 한다. 그 기관이나 단체는 다양한 사회안전 교육 프로그램과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주관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은 물론 관련 기업들의 관심도 필요하다. 정부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국제표준에 따른 운영요령과 기술기준 검토·정비 등 신속한 국제적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고려해 국제표준의 국내 도입이 원활하도록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재난관리책임기관과 기업은 BCP 도입이나 KS A ISO/PAS22399 교육을 통해 국제표준 제정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 국제표준 전문가는 “스웨덴의 볼보 같은 회사는 오래 전부터 사회안전(ISO/TC223 Societal Security)총회에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직접 참석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은 대부분 관심이 없다”며 “특히 재난관리 책임기관과 대기업은 지금이라도 국제표준화 작업에 참여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