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안전관리체계에 큰 변화를 부를 것으로 예상되는 법률이 새로 제정된다. 지난해 12월15일 정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중앙안전관리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제2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은 올해부터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가칭·국민생활안전법)을 제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에는 안전도시, 안전디자인, 안전지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재난관리에 대한 내용만 있고 안전은 없었다.” 사회안전 분야 전문연구자인 정지범 박사(한국행정연구원 사회위험·안전관리연구단 연구위원)는 지금까지 우리는 재난만 강조했을 뿐 안전에 대해선 너무 소홀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보면 국민과 기업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부실한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문화 정착 위해 필요
김진항 행안부 재난안전실장도 정지범 박사와 같은 지적을 했다. 예방 중심 재난관리를 위해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김 실장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재난 위주로 만들어져 안전 분야가 거의 빠져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안전과 관련된 내용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담아 개정하려고 하다가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서 생활안전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만들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그렇게 돼야 예방적 차원에서 재난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안전문화 정착 등 ‘OECD 수준의 안전 선진국 실현’을 위해 제2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에서 제시한 5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이 바로 생활안전에 관한 법률이다”고 밝혔다. 행안부 재난안전실에서 만든 제2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은 올해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각종 재난 및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의 재난 및 안전관리의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최상위 계획”이다. 제2차 기본계획은 지난해 12월15일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발표됐다.

제2차 기본계획은 수립 배경에 대해 “향후 5년간 국가 재난 및 안전관리 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중점추진과제들을 제시하여,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각종 재난관리책임기관들이 세부대책을 수립·운영할 수 있는 지침 제공”이라 설명했다. 제2차 기본계획(국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방향)의 비전인 ‘OECD 수준의 안전 선진국 실현’을 위한 5대 목표는 ▷선진 안전문화 정착 ▷안전한 국민생활환경 보장 ▷재해로부터 기업안전 확보 ▷안정적 국가기반체계 유지 ▷효율적인 재난관리체계 운영이다.

행안부 재난안전관리 조정기능 강화
김진항 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 5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이 바로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인 셈이다. 또 행안부 재난안전실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 담당자는 법률 제정의 목적을 “첫째 국가 재난안전관리시스템 개선, 둘째 국민 안전의식 제고”라고 밝혔다.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의 첫 번째 목적인 국가 재난안전관리시스템 개선은 지난 2008년 2월29일 행안부 안에 재난안전실이 신설된 목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재난안전실의 주요 업무가 MB정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통합적 재난안전 관리체제 구축’을 통한 국가재난관리 역량 집중이기 때문이다. ‘통합적 재난안전 관리체제 구축’을 위해 재난안전실은 유사 중복되는 법령 등의 정비를 통한 체계적인 재난안전관리, 재난관련 교육 및 전문인력 양성,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강화 등 국가 재난예방 및 대비 능력 보강, R&D 투자와 방재산업 육성 등 재난 인프라 확충, 재난대비 업무 통합 관리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인적재난의 경우 소방방재청 소관이지만 재난안전실이 신설되면서 태안기름 유출사고 등 여러 기관이 연계된 대형 재난은 행안부에서 조정·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소방방재청의 위상으로는 각 소관부처의 조정이 힘들어 행안부 재난안전실을 중심으로 인적재난에 대응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김진항 실장은 이에 대해 “현재 재난안전관리 체계는 보건복지가족부(전염병), 노동부(산업재해), 소방방재청(자연재해) 등 여러 기관으로 분산돼 있다”며 “이를 통합해 대응에서 예방 중심으로 재난안전을 관리하는게 재난안전실에 주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재난안전실 관계자도 “현재는 국가 안전관리시스템이 산업안전, 보건안전 등으로 나뉘어 있는 등 너무 복잡하고 일관성이 없다”면서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은 (행안부 재난안전실의) 국가 재난안전관리 조종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파괴력이 큰 법률”이라 말했다.

안전문화 정착 등 안전사업 근거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두 번째 목적인 국민 안전의식 제고는 행안부에서 추진 중인 각종 ‘안전사업’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국민 안전의식 제고와 관련해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은 안전도시 사업, 안전디자인 확대, 안전지수(재난 및 안전관리 기준) 개발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도시 사업은 제2차 기본계획의 중점추진과제 15개 가운데 하나로, ‘안전·안심·안정된 지역 만들기’를 목표로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안전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각종 안전사고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을 개선해가는 도시를 만들자는 사업이다.(<재난포커스> 2010년 1월호 ‘지자체 주도 한국형 안전도시 만든다’ 기사 참조) 안전디자인도 제2차 기본계획 중점추진과제(사회 각 영역에 안전디자인 적용 확대)에 포함됐다.

제2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안전디자인은 “‘주’ 또는 ‘부’ 기능으로서 안전을 포함하는 제품이나 시설 또는 공간을 대상으로 하여, 안전도를 높이거나 안전과 타 기능과 융합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범사회적 안전수준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노력”을 이른다. 제2차 기본계획은 또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과 문화가 접목되고, 이성과 감성이 조화되는 다차원적인 디자인을 안전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도시설계, 각종 제품 생산, 건축, 시설 등 유·무형의 인프라 및 제품에 직·간접적으로 적용”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안전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로는 도시계획을 할 때 적용하는 장애인도 손쉽게 각종 편의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무장애설계’(Barrier Free?Universal Design)가 대표적이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는 ‘사회 각 영역에 안전디자인 적용 확대’ 과제로 ▷각종 제품, 시설, 구조물 등을 대상으로 ‘안전디자인’ 개념 도입 유도 ▷범부처 차원에서 ‘안전디자인’ 개념 확산 추진 ▷안전디자인협회·학회, 지원센터 등 안전디자인 추진체계 정립 검토 3가지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3가지 내용엔 세계적으로 안전디자인의 성과를 올린 사례분석 및 벤치마킹, 안전디자인 우수제품 포상 및 공공기관 우선구매 추진 검토, 우수 안전디자인제품 평가 및 전시회 개최와 안전디자인관련 지식·정보 교류 활성화 등이 포함됐다. 안전지수란 안전관리 의식을 높이기 위해 화재·교통사고·산업재해 등에 대한 통계와 국민의 안전의식에 대한 사항을 종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안전도시 사업을 보면, 안전수준 향상을 위해 지역별 안전지수를 측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안전행태, 안전지식 등 총괄적인 안전의식 수준을 측정하고, 화재, 교통, 산업재해 등의 통계 자료를 활용해 지역의 안전수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한다는 내용이다.

2월 공청회 거쳐 의원입법 추진
행안부 재난안전실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은 2월로 예정된 공청회를 거쳐 의원입법 방식으로 제정될 예정이다. 정부 부처에서 법률안을 내고 제정하려면 다른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등 6개월~1년이 소요되지만 의원입법 방식은 이르면 1달 안에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지범 박사는 ‘국민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에 대해 “반드시 필요하고 시기적절한 일”이라며 말했다. 정 박사는 특히 “특히 지자체의 경우 재난안전 관련 업무가 3D로 꼽히는 등 찬밥 취급을 받아서 재난안전 담당공무원에게 동기부여가 안 되고, 재난안전 담당공무원에게 인센티브란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이란 말까지 들었다”면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면 지자체 평가 때 지자체장에게 부담을 주고 담당공무원에게 일 할 의욕을 심어주는 방안도 포함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