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사태’ 뒤 재난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ISO/TC 223은 2004년 12월26일 인도네시아 쓰나미 발생 이후 사회안전 국제표준화를 추진해 이르면 올해 말 제정작업을 끝마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안전 국제표준화 움직임에 발맞춰 국제표준 전문가 등의 조언을 통해 관련부처와 협회, 재난관리책임기관, 민간기업 등의 대응과제를 알아본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재난관리 또는 사회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널리 알려지진 못했지만, 우리나라도 한국BCP협회를 간사기관으로 해 일찍부터 국제표준화기구 사회안전분야(ISO/TC 223 Societal Security) 총회에 참여해 사회안전 국제표준화에 동참해왔다. 제5차 총회를 2008년 5월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2008년 12월18일에는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서 재난안전 국제표준인 ISO/PAS 22399를 국가표준인 KSA ISO/PAS 22399로 고시하는 등 나름대로 대비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회안전 국제표준화에 대한 우리의 준비태세는 엉망이다.

국제표준 전문가인 B박사는 이에 대해 “사회안전 국제표준 제정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우리는 매우 뒤쳐진 상황”이라며 “너무 늦은 만큼 준비과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안전 국제표준 제정에 대비해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 등 정부부처, 국제표준화기구 사회안전분야 한국 간사기관인 한국BCP협회, 공단과 공기업 등 재난관리책임기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을 비롯한 민간기업 등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조언했다. 이들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를 B박사의 조언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국제표준 도입·인증제도 마련 필요
우선 재난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정부부처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안전 국제표준을 보급하고 확산시킬 수 있도록 도입·인증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국제표준을 개발하고 제정하는 과정은 ISO 회원기구(한국은 기술표준원)에서 당연히 참여하므로 행안부, 소방방재청 등 정부부처에선 법과 제도를 통해 도입·인증제도를 만들고 널리 보급시키는 일을 맡아야 한다.

특히 인증제도와 관련해 내부관리자와 평가사, 지도사 등의 자격을 관리할 수 있는 인증기관을 지정하고 인증기관에 대한 심사·평가 지침을 마련하는 등 인증제도 운영조건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부처 몫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표준 보급·확산을 위해 도입하는 기업이나 단체(지방자치단체 포함)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필요하다. 인센티브 제도는 부처간 협의를 거쳐 법제화하고 관련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국제표준을 도입하는 기업단체에 제공할 인센티브에는 입찰 우대, 법인세 또는 훈련비 감면 등을 들 수 있는데 자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관련 분야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정부부처가 맡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에선 제2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통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기업 경제활동 지원’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기업의 재해경감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업무연속성계획(BCP) 같은 재난관리시스템을 보급하고, 기업이 재난안전표준에 따른 재해경감활동을 자율적으로 수립해 실행하면, 평가를 거쳐 재해경감 우수기업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재해경감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각종 행·재정적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기업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하고, 재해경감 우수기업에 제공할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재난안전관련 사회적 책임 강화를 목적으로 BCP, 전사적 위험관리(ERM) 등 선진위험관리기법의 국내 기업 활용 활성화 방안도 마련한다.

여기엔 민간기업의 위험관리에 대한 기업신용평가 실시로 ERM·BCP 도입 확대, 기업의 선진적 기업위험관리에 대한 평가제도 마련, 안전관리 우수기업에 대한 각종 행·재정적 지원 및 인센티브 지원 방안 마련 등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선진위험관리기법의 국내 기업 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기업의 위험관리에 대한 평가·인증 제도를 마련할 예정이다.

국내서만 5000개 기업 인증 예상
재난관리책임기관은 글로벌기업과 함께 국제표준화기구 사회안전분야 총회에 직접 참석하고 지원하는 등 국제표준화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 현재 상황은 사회안전에 대한 개념조차 모를 만큼 국제표준화 움직임에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 지정된 핵심 공기업은 반드시 국제표준 제정에 동참함으로써 미리 대처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등 영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스웨덴 볼보 같은 회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표준화기구 사회안전분야 총회에 스폰서로 활동하면서 직접 회의에도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 재난안전 관리자를 지정하고, 전문 컨설팅기관을 통해 안전관리를 위한 사규 또는 지침을 만드는 일도 해야 한다. 특히 사회안전 국제표준에 대비한 공부가 필요한데, 시작하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2008년 12월 기술표준원이 국가표준으로 고시한 KSA ISO/PAS 22399를 통해 관련 용어를 공부하는 방식으로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이에 대해 B박사는 “기업은 KSA ISO/PAS 22399 교육을 실시하고 KSA ISO/PAS 22399 교육을 받은 경우 사회안전 평가사 또는 지도사 시험을 볼 때 교육을 면제하고 시험만 치르게 하는 등 교육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표준화기구 사회안전분야 한국 간사기관인 한국BCP협회 역할도 중요하다. BCP협회는 사회안전 국제표준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과 인증제도 연구를 해야 한다. 사회안전(재난관리) 분야 전문가를 많이 보유하고 일찍부터 관련 인증제도를 도입한 미국, 영국 등 외국사례를 수집하고 연구한 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게 재난관리 전문가 교육을 맡은 BCP협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란 뜻이다. 사회안전 분야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ISO 9000 시리즈 등 이미 활성화된 분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인증기관이나 컨설팅회사, 기업 등에서 활동할 사회안전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대해 B박사는 “ISO 9000 시리즈 인증을 받은 국내 기업이 3만5000개 정도”라면서 “이를 감안할 때 사회안전 국제표준이 제정되면 적어도 5000개 기업이 인증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ISO 9000 시리즈 인증을 받은 기업 3만5000개의 10%만 잡아도 3500개인데, 이보다는 많을 것이므로 5000개 정도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표준 무관심하면 외톨이 전락”
한편, 국제표준 도입 필요성에 대해 한 전문가는 “국제 사회에서 ‘표준’은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하며 “표준을 선점하면 엄청난 이익을 챙기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뒤치다꺼리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박사도 스웨덴 비상관리사무국 상임고문이자 국제표준화기구 사회안전분야 의장인 크리스터 쿰린(Krister Kumlin)의 말을 인용해 사회안전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크리스터 쿰린은 ISO/TC 223 1차 총회를 마친 뒤 ISO에서 발행하는 <ISO 포커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재난관리시스템 표준화 효과에 대해 설명하며 “사회안전 국제표준을 도입하지 않으면 재난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B박사는 “크리스터 쿰린의 지적은 사회안전 국제표준을 도입하지 않았을 경우 국지적 또는 세계적 재난을 당했을 때 외톨이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면서 “국제표준을 도입하지 않아도 물자 원조는 받을 수 있겠지만 물자나 지원 받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재난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정보가 있어도 해독을 못해 실행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