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오 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교수

2010년 새해 첫 출근일에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25.8cm나 내린 103년만의 폭설로 모든 교통수단이 마비되었으며, 마지막 수단인 지하철조차 눈과 강추위로 얼어붙어 운행이 지연되거나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모든 기업과 산업현장에서 업무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심지어는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무회의가 지연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날 폭설은 기상청이 하루 전에 예보한 것과는 무려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적설량을 기록하였고, 폭설이 내리고 있는 순간에도 예측 부족으로 재난경보는 발령되지 않았으며, 뒤늦게 경보가 발령되었을 때에는 이미 대응에 손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기상청에서는 지구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한 재난과 관련해서는 예·경보 기능을 이미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난 1월 15일 발생한 아이티의 대지진으로 인한 국가사회의 마비와 혼란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재앙이 닥친다면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운영 및 경제활동의 유지를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이 간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자연재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사고나 범죄, 테러 등의 사회적 요인으로 인하여 에너지, 통신, 교통, 운송 등의 주요 사회기반체계가 마비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며, 현재 우리나라의 재난관리 수준으로는 국가와 기업 및 산업현장에서의 대응과 수습 및 정상상태로의 신속한 복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를 중심으로 이런 재난상황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대응하여 신속히 수습 및 복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재난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근거로 안전관리 기본계획과 집행계획 수립 및 ‘재난위기대응매뉴얼’ 작성을 통하여 재난 대응 및 복구 업무가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정비를 계속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에도 불구하고 절차가 미흡해 재난상황시에는 아직도 대응과 복구에 우왕좌왕하며 언론과 여론에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재난관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국가의 재난대비 수준에 비해 산업현장과 기업의 대비상황은 어떠한가? 일부 대기업에서 기존의 안전관리체계에 BCP를 도입해 재난에 대비하는 체계를 갖추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과 산업현장에서는 재난대비와 관련하여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다. 정부에서는 ‘재해경감을 위한 기업의 자율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에서의 업무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 지원을 통한 재난관리를 유도하고 있으나, 재난관리를 위한 재난관리표준이 확정되지 않았고 아직 기업의 인식도가 낮은 관계로, 선진국 수준의 기업과 산업현장의 재난대비체계 구축은 요원한 실정이다.

BCP(Business Contiuity Planning)는 재난이나 위기 상황 시에도 국가나 기업의 업무활동이 중지되지 않고 핵심기능은 유지하면서 응급대응(Emergency Response)을 통하여 정상적인 업무진행을 신속히 회복한다는 개념의 경영기법으로, 주로 미국에서 재난/위기관리의 기법으로 적용하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같은 개념이지만 BCM(Business Contiuity Management)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부문을 대상으로 이를 적극 보급하고 있다. BCP/BCM은 2000년대에 들어와 획기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으며, 이는 2001년 발생한 미국의 911테러가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미국은 1995년 제정된 ANSI/NFPA 1600 Recommended Practice for Disaster Management 표준을 응급대응과 업무연속성 부분을 추가하여 2000년 개정된 ANSI/NFPA 1600 Standard on Disaster/Emergency Management and Business Continuity Programs 표준을 제정하였는데, 2001년 911테러이후 이를 더욱 보강하여 2004년도판 표준이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 영국은 영국표준협회인 BSI에서 2003년도부터 준비하여, 2006년도에 BS 25999 - 1 Business Continuity Management British Standards Institution(BSI)을 제정하였으며,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제3자 인증을 위한 형태의 표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호주(HB 221), 이스라엘(SI 24001), 일본(JISC) 등의 국가에서도 재난관리와 관련한 국가표준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국가들의 표준과는 별도로 재난/위기관리의 국제적 특성을 감안할 때 이를 국제표준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태동하여, 과거 민방위(Civil Defence) 분과였던 ISO 223 분과가 사회안전(Sicietal Security) 분과로 탈바꿈하여 재난/위기관리와 관련한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2007년 11월 ISO/PAS 22399 Guideline for incident preparedness and operational continuity management (IPOCM) ‘사고대비 및 운영연속성관리 지침’이 제정되었으며, 조만간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경영시스템 표준이 등장할 전망이다. 이 새로운 경영시스템 표준은 ISO 22301 Preparedness and operational continuity management (PCMS) ‘대비연속성경영시스템’으로서, 현재 산업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ISO 9001(품질경영시스템), ISO 14001(환경경영시스템)과 더불어 주요한 경영시스템으로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술표준원에서 ISO/PAS 22399를 근거로 KSA ISO 22399의 한국산업표준을 제정하였으며, 기업에서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이의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 PCMS(대비연속성경영시스템) 역시 BCP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재난관리절차를 표준화한 것이기 때문에, 핵심적인 내용은 BCP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BCP의 절차를 요약하면, 위기/재난(PCMS에서는 이것을 incident, 사고라고 정의하고 있음)에 대해 그 위험성(risk)을 평가(assessment)하고, 이것이 업무에 미치는 충격(업무충격, Business Impact)을 분석(analysis)하여, 핵심적인 업무기능이 지속되면서 신속히 정상 회복될 수 있는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사전 교육·훈련을 통해 재난/위기 대응역량을 강화하는 체계로 되어 있다. 앞으로의 자연재난이나 인적원인에 의한 재난/위기 상황은 이번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한 폭설대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전에 그 징후를 정확히 예측하거나 경고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에 당면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는 경우는 정부나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업무기능이 마비되어 국가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는 상황도 부정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산업현장에서 현재의 재난/위기에 대한 대비/대응 수준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재난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국제표준으로 등장한 PCMS 도입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서 BCP의 기반을 확고히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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