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범 도시공학박사 한국행정연구원 사회위험ㆍ안전관리연구단 연구위원

필자는 지난 2009년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안전관리 현황을 조사하면서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재난안전 관리체계의 문제점은 결국 통합시스템과 사람이 정리할 수 있다.

재난안전 선호분위기 조성하자
통합시스템 부재는 분산되고 중복된 안전관리 체계의 문제 및 예방보다는 복구에 치우친 시스템의 문제로 그동안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던 사안이다. 사람의 부재 문제는 재난안전 분야가 공무원들에게 기피 업무로 인식되어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는 이야기이다. 즉,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자리가 위태한 일이 다반사이며, 만에 하나 사고라도 발생하면 밤샘근무는 기본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관련 업무가 폭주하면서 예전에 비해 노동의 강도와 시간이 적어도 두세 배는 늘어났다고 한숨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안전 업무를 통하여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당연히 자치단체장을 만날 기회조차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재난 및 안전업무를 통해 유일하게 보상받는 길은 빨리 다른 부서로 전출되는 것뿐이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지난 2009년 행정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재난안전분야 공무원의 약 80%가 해당분야에서 2년 이내로 근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물론 공무원의 순환보직에 의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이 분야가 기피 대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난안전도 결국 사람의 일이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능력 있는 인재들이 재난안전 업무를 선호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실 안전은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며,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에 있어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항목이다. 따라서 재난안전 분야에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도전하고, 경험을 쌓고, 이를 통해 전문성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재난안전은 정치성공 필요조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이다. 일반적으로 재난안전관련 업무는 목표를 부여하기도 쉽지 않고,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즉, 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는 지역 축제를 개최한다든지, 엑스포를 유치하는 활동들에 비해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 역시 자치단체장의 관심을 받기는 쉽지 않고, 따라서 인센티브나 장기근속에 따른 전문성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 정도까지는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 이후 2만 달러가 되면 안전 문제가 매우 강조된다고 한다. 우리 국민 역시 최근에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이명박 정부 역시 기존의 행정자치부를 행정안전부로 바꾸면서 재난안전 업무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비단 중앙정부 차원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안전의 가치를 먼저 파악한 자치단체장들은 안전을 전면에 내걸고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원, 천안, 송파 등에서 획득한 WHO의 안전도시 공인사업이다. 사실 이 사업은 중앙정부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되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여러 자치단체들은 이 사업에 도전하여 자치단체의 안전수준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에 2009년 행정안전부는 WHO의 사업을 벤치마킹하여 한국형 안전도시 시범사업을 실시하였고, 올해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형 안전도시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권자의 성향에 대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보면 재난안전 정책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긍정적인 사건보다는 부정적인 사건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negativity bias). 즉, 유권자들은 그들의 시장이 임기 내에 이루었던 엑스포의 유치보다는, 임기 내에 시장의 무관심 혹은 부주의로 발생했던 스캔들, 재난, 사고 등에 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재난안전 관련 업무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치단체장의 연임, 혹은 더 높은 지위로의 이동을 위해서도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수 업무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재난안전 관련 업무는 재선과 정치적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고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장이 직접 재난안전 챙겨야
최근의 추세를 살펴보면 재난안전 업무가 다만 부정적인 것을 회피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점을 더욱 강조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WHO 안전도시 공인이나 행정안전부의 한국형 안전도시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서 각종 사고를 예방한다는 측면과 함께, 안전 이미지를 전면에 내걸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측면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자치단체의 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재난안전 업무가 시민 서비스 업무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재난안전 업무는 방재에 치우치면서 하드웨어적 설비의 관리 업무가 되곤 했다. 그러다보니 관련 공무원들은 기존 설비에 대한 감시, 사고 시 대응, 그리고 사후 복구에 매달리며, 실제로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기 보다는 규제자로서 혹은 뒤처리 전담반으로서의 역할만 하곤 했다.

앞으로는 현 행정안전부의 정책방향을 따라 재난안전 업무가 시민들의 생활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 관련 시민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고, 각각의 민원에 대해 공무원들의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고, 적절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자치단체에 재난안전 최고 책임자를 두어야 한다. 최근 바람이 불고 있는 전사적 위험관리(ERM), 업무연속성계획(BCP) 등은 안전 업무가 단순히 재난안전부서의 일만이 아닌 조직 전체의 임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 하에 관련업무의 최고 책임자 즉, 최고위험관리자(Chief Risk Officer:CRO)를 두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치단체 내 재난안전 업무가 책임성 있게 수행되고, 나아가 관련 위험관리 절차를 자치단체 내 모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관련 업무의 효과적 평가를 위해 별도의 내부 감사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재난안전 업무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서는 적극적 시민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사실 자치단체 내의 위험요소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다. 따라서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그 지역에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안전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지역안전관리위원회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자치단체에서 지역안전관리위원회가 유명무실하거나 서류상으로만 운영되곤 한다.

이 위원회를 원래의 취지에 맞게 실효화할 필요가 있으며, 가장 적합한 방법 중 하나는 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지역 실정을 잘 알고 있는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장이 재난안전관리 업무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공무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업무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할 것이고, 장기근속과 전문성 습득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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