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남·북극 빙하가 녹고 있다는 경고는 이제 새삼스런 게 아니다. 빙하뿐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 안데스 산맥, 킬리만자로 산 등의 만년설도 빠르게 녹고 있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는다는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어서 지구촌에 커다란 재앙을 부를 수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급히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1m 이상 해수면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까지 있다.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닷물이 차올라 국토가 잠식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섬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 재난포커스 - 서은미 기자 >

‘인도양의 마지막 낙원’ 세이셀
“우리 116개 섬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하루빨리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는 해변과 관광객, 우리 땅과 삶을 송두리째 잃게 될 것이다.” 지난해 2월26~27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UN-HABITAT·인간정주위원회) 기후변화에 관한 시장회의에 참석한 마리 앙투아네트 알렉시 빅토리아 시장의 하소연이다. 세이셀 수도 빅토리아 시장인 알렉시는 국토를 잃을 위험에 처한 세이셀 처지를 호소하며 “모든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알렉시 시장의 하소연처럼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자리한 섬나라 세이셀 공화국 국민은 기후난민이 될 처지에 놓였다. 세이셀은 아프리카대륙 동부 케냐에서 1800㎞쯤 떨어진 서인도양에 자리한 섬나라다. 적도 부근에 몰려 있는 116개 섬으로 이뤄졌으며, 면적은 약 455㎢에 불과하다. 이는 제주도 4분의1 크기다. 인구도 약 8만명뿐인 작은 섬나라지만 진귀한 동식물이 많고 울창한 열대림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등 ‘인도양의 마지막 낙원’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경제는 주로 농업과 어업에 의존하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짭짤한 관광수익을 거두고 있다. 일부 섬에선 아직도 소달구지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만큼 오염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섬나라 사람들에게 지구온난화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기후변화로 바닷물이 점점 차올라 살 땅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세이셀이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바다속 내각회의’ 연 몰디브
잠수복을 입은 10여명이 산소탱크를 등에 짊어지고 에메랄드빛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바다 속엔 이들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마련돼 있었다. 이들은 각자 의자에 앉은 뒤 손짓을 해가며 회의를 열었다.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2009년 10월17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몰디브에서 있었던 일이다. 몰디브 수도 말레에서 쾌속정으로 20분 걸리는 기리푸시섬 앞바다에서 열린 이날 회의는 모하메드 나시드 몰디브 대통령과 장관 13명이 참석한 각료회의였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바다 속에서 열린 셈이다. 30여분간 열린 이날 회의에서 나시드 대통령과 장관들은 방수펜을 사용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세계 각국에 촉구하는 결의안에 서명했다. 결의안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권리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힘을 모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시드 대통령과 장관들이 수중각료회의를 열고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한 배경에는 수몰 위기에 처한 몰디브 상황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전달하려는 뜻이 배어 있다.

몰디브는 스리랑카에서 남서쪽으로 약 650㎞ 떨어진 섬나라다. 적도 부근 인도양에 산재한 작은 산호섬 1192개로 이뤄졌으며, 사람이 사는 섬은 202개다. 인구가 38만여명에 불과한 몰디브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과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지녀 해마다 관광객이 늘고 있다. 특히 ‘설탕같이 하얀 백사장’으로 유명하며,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라고도 불린다. 몰디브 관광부에 따르면 2008년 몰디브를 찾은 관광객은 몰디브 인구의 두 배에 가까운 68만3천12명에 달했다.

관광객에게 환경세 부과 예정
그런데 국토가 대부분 낮은 산호섬이어서 앞서 소개한 세이셀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m에 불과해 이미 오래 전부터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지난 2007년 유엔 기후변화위원회에서 바닷물이 국토를 잠식해 2100년엔 몰디브에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나시드 대통령 전임 마우문 압둘 가이윰 대통령 때부터 수몰 위험을 강조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해왔다.

가이윰은 특히 “우리는 환경파괴와 무관한 나라임에도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고 선진국에 불만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상황이 나빠져 2008년 11월11일 취임한 나시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몰디브가 돈을 주고 새 국토를 사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새 땅을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 터전으로 몰디브와 거리가 가깝고 기후조건도 비슷한 인도와 스리랑카를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돈을 마련해 새 국토를 사겠다는 나시드 대통령의 공약은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몰디브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환경세를 걷겠다는 법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나시드 대통령은 “기후 변화와 싸우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몰디브의 리조트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 1인당 하루에 3달러씩 환경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나시드 대통령은 또 지난해 “우리는 해수면보다 딱 1.5m 더 높이 있다. 그보다 1㎜만 더 해수면이 상승해도 몰디브인 모두가 휩쓸려갈 것”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40년만에 땅 반도막 난 볼라섬
지구온난화는 해수면뿐 아니라 강의 수량까지 상승시키면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섬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40년 만에 반도막이 된 방글라데시 볼라섬이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섬인 볼라섬은 메그나강과 벵골만 사이에 자리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한 강과 파드마강이 합류해 만들어진 메그나강은 벵골만으로 흘러드는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메그나강과 벵골만 수량이 빠르게 늘어났다. 메그나강과 벵골만 수량증가는 볼라섬에 큰 재앙을 불러 왔다.

	40년 만에 전체면적의 절반이 물에 쓸려 사라진 방글라데시 볼라섬

섬 면적의 절반이 사라지고 50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발생시킨 것이다. 지난 2007년 볼라섬 상황을 취재한 <문화일보> 기사에 따르면, 10년 사이에 9㎞에 달하는 강변이 사라졌는데, 한 주민은 동네 사람의 70%가 3번 정도 집을 잃었다. 8년 만에 강변 4㎞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라른 주민은 “강폭이 5년 전에 비해 3배가 늘어났다”며 “한쪽에선 없어지고 한쪽에서 새로 땅이 생기지만 새로 생기는 땅은 없어진 땅에 비해 10분의1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볼라섬은 지난 40년간 면적이 약 절반으로 줄었으며. 앞으로 40년 안에 삼 전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