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화두다. 1월12일 일어난 아이티 지진 이후 지구촌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대참사를 부른 아이티 지진 뒤에도 전 세계에서 대규모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현지시간으로 2월27일 새벽 3시34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서쪽으로 325㎞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규모 8.8의 강진이다. 아이티 지진(규모 7.0) 보다 500배나 위력이 강한 칠레 지진으로 지구촌은 또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하지만 칠레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아이티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아이티보다 대비를 잘 했기 때문이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아이티는 지진으로 온 나라가 풍비박산이 났다. 아이티 지원국들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티 지진으로 22만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30만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조사됐다. 재산피해도 엄청나 주택 10만5000채가 무너져 내리고 20만8000채가 파손됐다. 아이티 대통령궁도 지진으로 파손되고 학교 1천300개와 병원 50개도 제 기능을 못하게 됐다. 아이티란 나라 전체가 지진이란 대재앙에 그대로 노출된 꼴이다. 반면 아이티 지진보다 500배 강한 규모 8.8의 대지진에 강타당한 칠레는 아이티보다 피해가 훨씬 적었다.

칠레 정부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700명으로 확인됐다. 22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아이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물론 칠레도 지진으로 완파된 50만채를 포함해 주택 150여만채가 붕괴되고 산업·도시 인프라가 마비되는 등 300억 달러(34조원)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인명피해가 적은 데 대해 전문가들은 칠레 정부가 철저히 대비해 지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철저한 내진설계가 핵심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내진 설계라고 입을 모은다. 내진 설계는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의 내구성을 뜻한다. 내진 설계가 왜 중요한지는 미 지질조사국(USGS)의 지진학자 폴 얼 박사의 지적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얼 박사는 지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규모나 빈도보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라며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 박사의 말은 지진피해는 대부분 건물이 무너져 생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진이 무서운 이유는 건물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인명피해뿐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재산피해도 대부분 건물이 무너지면서 발생한다. 이는 곧 높고 큰 건물과 인구가 밀집한 도시 근처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인명과 재산피해가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이티 지진 이후 세계 곳곳에서 규모 6.0 이상 강진이 발생했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칠레 지진 외에 90여명이 부상한 대만 지진(3월4일·규모 6.4)과 50여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당한 터키 지진(3월8일·규모 6.0)뿐이다.

그밖에 2월1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남서쪽 110㎞ 지역에서 규모 6.7, 2월28일 아르헨티나 살타 북쪽 20㎞ 지역에서 규모 6.3, 3월5일 칠레 칼리마 동북동쪽 87㎞ 지역에서 규모 6.4, 3월11일 칠레 산티아고 남서쪽 147㎞ 지역에서 규모 7.2 등 강진이 이어졌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이 지진들은 모두 육지에서 발생한 것들이며 해역에서 발생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처럼 강진이 계속됐음에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이유는 도시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쯤되면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인다”는 얼 박사의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고 내진 설계의 중요성을 곱씹어보게 된다.

저층 건축물 내진설계 필요
1월12일 아이티 지진과 2월27일 칠레 지진은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과 지난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지진에 이어 또다시 지구촌에 지진의 무서움을 뼈 속 깊이 각인시켰다. 2008년 5월12일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규모 8.0 강진으로 8만70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지난해 9월30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한 규모 7.6 강진은 110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았다.

새해 초 중앙아메리카 아이티와 남아메리카 칠레에서 발생한 대지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아이티 지진과 칠레 지진은 특히 재난에 대한 대비태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와 관련해 국립방재연구소는 최근 펴낸 뉴스레터에서 아이티와 칠레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을 분석해 관심을 모았다.

먼저 아이티 지진에 대해 분석한 국립방재연구소 뉴스레터 올 2월호는 저층건물과 학교·병원 등에서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며 민간소유 건축물에 대한 내진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1~2층 저층 건축물을 내진설계 대상건축물에 포함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교시설 등의 내진등급 상향 조정 필요성도 제시했다.

방재연구소는 이어서 △기존 공공시설물 내진보강 △내진설계기준 미제정시설 기준 조기 제정 △교정시설 내진설계 대상시설로 추가 지정 △지진방재 교육 및 훈련 강화 등을 우리나라 지진대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방재연구소는 정부 여러 부처에서 나눠서 관리하는 주요시설에 대한 비상대처계획 수립 필요성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전기, 통신, 가스, 상하수도 등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라이프라인 시설과 항공, 철도, 원자력 등 국가기반시설의 신속한 대응·복구를 위한 비상대처계획 수립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철저한 내진설계로 피해 최소화
방재연구소 뉴스레터 3월호는 칠레 지진 뒤 칠레정부의 대응과 시사점을 분석해 제시했다. 뉴스레터에서 방재연구소는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지진이 발생하자 ‘대재난 사태’ 선포 뒤 전체 15개 주 가운데 6개 주를 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올해 칠레 예산의 2%를 강진에 따른 피해복구와 재건활동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칠레 지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에 대해선 먼저 “칠레 정부의 지진에 대한 대비와 철저한 내진설계, 강력한 건축법규와 체계적인 구호,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며 특히 “저소득층 주택의 내진설계와 보수보강에 주력한 결과 아이티 지진과 달리 빈민층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칠레 정부의 지진대책을 높이 샀다. 또 신속하고 차분한 칠레정부의 대응도 대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진 발생 직후 해안도시 탈카우아노를 강타한 2.34m 지진해일(쓰나미)에 대한 칠레 정부의 조치는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방재연구소는 “칠레 정부가 지진피해에만 몰두한 탓에 지진해일로 인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분석하며 특히 “지진해일 경보를 뒤늦게 발령한 덕분에 해안지역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방재연구소는 이어서 칠레 정부가 지진과 지진해일 피해를 입고 나서야 뒤늦게 국제연합(UN) 등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지진 발생 뒤 약탈 등 사회불안으로 군병력이 현장에 급파돼 사회 안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