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면서 엄청난 높이의 마천루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에서도 500m를 훌쩍 뛰어넘는 높이의 초고층빌딩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말 많고 탈 많았던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등이 지어질 예정이다. 이들 초고층빌딩은 지진·태풍 등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 건설될까? 대만의 ‘타이베이 101’을 통해 알아본다.
< 재난포커스 - 김용삼 기자 >
타이베이 101의 정식 이름은 타이베이금융센터다. 하지만 대만에선 주로 타이페이 101이라 부른다. 우리가 63빌딩이라 부르는 건물의 정식 이름이 한화63시티이듯, 건물은 정식 이름보다 쉬운 애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2004년 준공된 타이베이 101은 509.2m 높이의 지상 101층, 지하 5층짜리 초고층빌딩이다. 500m보다 높게 지어진 세계 최초의 건물이며 지난해 1월5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부르즈 칼리파(옛 부르즈 두바이)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162층짜리 부르즈 칼리파는 높이가 무려 828m에 달한다. 타이베이 101 겉모습은 중국의 전통 보탑과 대나무 마디가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 건물 외면 유리는 8t 트럭이 지나가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또 자외선이나 태양열의 66%를 차단하는 성능을 가져 건물 내부가 따뜻해지는 것을 막는 등 냉난방 효과가 뛰어나다. 그밖에도 타이베이 101은 이미 완공됐거나 현재 건설중인 초고층빌딩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겉모습이야 천편일률적인 국내 아파트와 달리 세계 모든 초고층빌딩들은 그 나라 또는 도시의 랜드 마크 역할을 맡아야 하기에 서로 도드라져 보이기 위해 애쓰므로 특징이랄 수 없다. 그러면 뭐가 다르다는 걸까. 답은 입지조건이다. 타이베이 101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지어졌다. 작은 섬나라 대만은 자연재해가 잦다. 특히 태풍과 지진으로 매년 큰 피해를 입는 나라가 대만이다.
거센 태풍에 흔들림 없고
타이베이 101은 세계에서 가장 폭풍우가 심한 지역에 자리했다. 북서태평양은 전 세계 열대성 저기압의 3분의 1이 발생하는 가장 활발한 태풍지대다. 강한 바람은 고층 빌딩의 커다란 위협이 된다. 100층이 넘는 초고층빌딩은 매서운 바람의 힘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지난 20년간 연평균 4차례 태풍이 상륙했다. 대부분 3급 태풍으로 이 지역에선 최고 등급이다. 심할 경우 시속 320㎞에 달하는 강풍이 불고 홍수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기도 한다.
이런 자연환경 때문에 초고층 건물을 기존 철골구조로 지으면 심각한 문제를 부를 수 있다. 골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센 바람에 휘기 마련이다. 특히 높은 층 입주자들은 건물이 흔들려 업무에 지장을 받게 된다. 미국 구조공학자 레슬리 로버트슨은 “빌딩 움직임은 움직이는 배와 비슷해 높은 건물에선 뱃멀미와 같은 증세를 느끼게 된다”며 “따라서 입주자들의 건강을 위해 흔들림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태풍을 이겨내려면 건물이 매우 견고해야 한다.
건축가들은 혁신적인 설계로 자연재해에 맞섰다. 타이베이 101엔 고강도 콘크리트로 만든 대형 기둥 8개가 있다. 8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은 암반 30m 아래까지 확실히 박혀서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건물 위쪽은 8㎝ 두께 강철 대들보로 보강했다. 콘크리트와 강철의 결합 덕택에 타이베이 101은 거센 태풍에도 끄떡없다. 타이베이 101처럼 모서리가 네모난 건물은 강풍에 틀어지고 흔들리기 십상이다. 때문에 기술자들은 시속 240㎞ 이하 풍동에서 다양한 설계를 시험한 끝에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타이베이 101 설계에 참여한 구조공학자는 “타이베이 101은 태풍이 잦은 지역에 자리해 남서쪽 모서리를 안쪽으로 꺾었다”며 “강풍에 의한 진동을 차단해 건물이 안전해진 것이다”고 말했다. 또 타이베이 101은 건물 주변 바람을 분산시켜 건물이 덜 흔들리게 했다. 이에 대해 구조공학자는 “바람에 관한 설계 기준이 가장 엄격했기 때문에 아마도 대형 태풍이 불어 닥칠 경우 가장 안전한 대피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풍이 불면 상부가 흔들리며 입주자들이 뱃멀미를 느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이베이 세계에서 가장 큰 거대한 평형추를 88~92층 사이에 설치했다.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관성력 때문에 직경 5.5m에 무게 730톤짜리 강철공이 반대쪽으로 기울어 건물 흔들림을 상쇄한다. 이론상 강풍에 의한 건물 진동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베이 101은 이 세 가지 특징 덕분에 태풍이 잦은 대만에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건물이 됐다.
지진에도 끄떡없이 설계
타이베이는 세계에서 가장 지진활동이 활발해 ‘불의 고리’라고도 불리는 환태평양화산대 가까지에 있어 매년 2번 정도 지진이 발생한다. 최근에도 대만에선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혔다. 3월4일 대만 남부 가오슝 부근에서 진도 6.4 규모의 강진이 일어나 90여명이 부상당으며 8일에도 대만에선 5.1 규모 지진이 발생하는 등 매년 강진이 끊이질 않는다. 지진이 타이베이 101을 덮치는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시간문제인 셈이다.
태풍은 예보가 가능해 미리 대비할 수 있지만 지진은 현대 과학으로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건물에 가해지는 충격도 태풍보다 훨씬 강하다. 토목기술사인 애덤 크루 박사는 “지진은 바람보다 훨씬 강해서 대형건물이 바람에 부서지기란 쉽지 않지만 지진 앞에선 간단히 무너져버린다”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유연한 건물이 충격엔 더 강하다”고 말했다. 크루 박사의 말처럼 타이페이 101이 강한 지진을 견디려면 탄성이 필요했다.
단단해야할 곳은 단단하게 유연하게 해야 할 곳은 유연하게 지어야 했던 것이다. 타이베이 101은 콘크리트로 속을 채운 강철관 36개를 넣어 건물의 강도를 높였다. 지진이 나면 이 기둥들이 건물을 지탱하는 한편 탄성을 가진 나머지 부재는 이리저리 휘면서 흔들린다. 타이베이 설계책임자는 “기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만한 높이의 건물을 지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첨단 내진 설계를 적용한 타이베이 101은 공사도중 대자연의 시험을 호되게 치렀다. 2002년 3월31일 대만 북부에서 매그니튜트 7.1의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 지진으로 근처의 작은 건물이 무너졌고 공사중이던 타이베이 101 꼭대기(당시 56층·약 250m 높이)에 설치됐던 작업용 타워 크레인 땅 위에 있던 자동차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타이베이 101은 말짱했고 설계대로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타이베이 101 설계자들은 타이페이 시내에서 지진에 가장 안전한 곳이 이곳이라고 주장한다. 타이베이 101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61대는 분당 1012m(시속 60.6㎞) 속도로 상승해 전망대 입구가 있는 5층(지상 25m)에서 전망대가 있는 89층(지상 382.2m)까지 37초에 올라갈 수 있다. 이는 2004년 당시 세계 최고 속도로 기네스북에 실렸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