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안전문화 업무를 넘겨받은 행정안전부가 ‘안전문화 선진화’를 본격 추진한다. 이를 위해 행안부는 5월3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안전 선진국 실현을 위한 ‘안전문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교통·교육·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열린 토론을 벌였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행안부 재난안전실에서 마련한 안전문화 토론회는 전문가들의 안전문화 선진화 실천방안 발표와 주제발표 및 지정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복수 행안부 재난안전정책과장, 장일준 경원대 교수, 허억 안실련 사무총장은 안전문화 선진화 실천방안에 대해 발표했고 주제발표는 박두용 한성대 교수가 맡았다. 최복수 과장은 행안부의 안전문화 선진화 추진계획을 중심으로 올해 재난안전정책 추진방향<5월호 참조>에 대해 발표하면서 안전문화의 개념을 제시했다.

최 과장은 안전문화란 “사회구성원의 안전에 대한 태도와 관행의식이 안전중심으로 체질화되어 가치관으로 결집됨으로써 제도와 관습으로 정착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리고 안전문화 선진화 추진을 위한 주요과제로 안전문화협의회 구성, 안전지수 개발 및 활용, 안전디자인 개념도입 및 보급, 국민 안전교육 확대, 안전문화 운동 전개, 안전문화 선진화 추진을 위한 법적근거 마련 등을 꼽았다. 최 과장에 이어 장일준 경원대 교수는 ‘G20 정상회의 대비 안전우선의 질서문화 정립방안’에 대한 발표를 통해 국내 교통문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안전우선 교통문화 정착 방안을 제시했다.

교통법규 위반 단속 강화하자
교통전문가인 장교수는 국내 교통문화는 “보행자와 차량이 경쟁하는 구도”라며, 특히 보행 교통 안전은 뒷전이고 차량 우선으로 흘러와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가 서로에게 불만을 가진 상태라고 꼬집었다. 보행자 안전을 무시한 좁은 보도, 보도에 버젓이 자리 잡고 주인행세를 하는 보행 장애물, 보행공간은 무시하고 지어지는 건축물 등 보행자를 위한 배려가 거의 없이 대부분 차량 위주로 짜여졌다는 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아파트 단지와 공공기관 등의 넓은 주차장을 예로 들면서 “넓은 공간에 보행 공간은 전혀 없이 주차선만 그어놓은 셈”이라 꼬집었다. 때문에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보행전용 공간이 없는 탓에 보행자는 거침없이 달리는 차량(운전자)에게 불만을 갖게 되고 차량은 넓은 공간을 모두 걸어 다니는 보행자에게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 그는 국내 자동차 교통에 대해서도 ‘법규위반자의 천국’이라며, 교통법규 위반 처벌 수준이 선진국에 견줘 솜방망이 수준인 탓이라고 비판했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2003년 연구결과 국내 대비 범칙금 수준이 최고 15배이며, 범칙금 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향조정하고 단속인력과 장비도 늘리는 등 경제적 제재 수단을 활용해 도로교통법규 위반자를 단속하고 있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속확률과 범칙금 수준이 낮고, 무인단속장비에 의존하면서도 무인단속장비 정보를 제공하는 형편이어서 범칙금이 유명무실한 수준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장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교통법규 위반 단속 강화다.

안전우선의 교통문화 정착엔 환경 및 규정 개선, 단속, 교육 등 세 가지가 있는데, 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리 형편에선 단속이 최우선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선진국들이 모두 활용하고 있는 일반 시민 신고제도를 활용하면 단속 인력 및 단속 시간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장 교수에 이어 허억 사무총장은 ‘공동체 단위 안전문화운동 추진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의 안전문화정착 활동사례를 소개한 뒤 공동체 단위별 안전문화운동 추진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허 사무총장은 특히 일상 속에서 안전을 생활화하는 작은 실천운동이 효과가 크다며 생활안전가족회의개최 운동, 비상구 찾기 운동, 안전사고 취약지점 제보운동 등을 예로 들었다.

안전 분야 컨트롤타워 필요하다
‘OECD 수준의 안전 선진국 실현방안’에 대한 주제발표를 맡은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안전사고 사망률을 2015년까지 OECD 15위 이내 수준으로 줄이려면 지속적인 안전교육과 안전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자료를 분석해 대책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통계시스템의 개발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현행 안전관리 행정체계를 평가하며 정부 안에서 “안전은 곁다리 조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안전행정 컨트롤타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청와대에 안전특보를 신설하고 생활안전 및 직업안전보건 업무를 통합한 행정기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합안전업무를 맡을 신설 행정기관으로 박 교수는 ‘안전보건청’을 내놓았다. 박 교수의 안전보건청 신설 제안은 그의 발표 뒤 이어진 지정토론 때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박 교수를 뺀 토론 참가자 중에서 안전 컨트롤타워 구실을 할 힘 있는 정부부처가 있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신설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이는 이명선 이화여대 교수뿐이다. 나머지 참석자들은 의견을 밝히지 않거나 현재 재난안전 주무부처인 행안부에 힘을 실어주는 게 옳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토론 참가자 가운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고재철 실장은 지금까지 안전문화에 대해 공급자 위주로 생각해온 게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안전에 대한 많은 얘기들 안에는 ‘아니면 말고’란 생각이 포함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실장은 또 문제는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위험 불감증이라면서 우리 사회는 위험을 알면서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고 실장은 안전관리를 못 하면 강력히 규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사고에 대한 책임비용이 너무 낮기에 사업주 등이 사고 위험을 없애는 데 투자를 꺼린다는 주장이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진항 행안부 재난안전실장은 “안전사고나 화재는 대부분 저소득 계층에서 발생한다”며 “행안부와 소방방재청 등이 소외계층에게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재원이 한정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실장은 교통사고를 예로 들면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끼어들다가 사고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안전하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 자신은 안 지키면서 남보고만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