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범 도시공학박사 한국행정연구원 사회위험ㆍ안전관리연구단 연구위원

2009년 12월 제2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이 계획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의 5년간 우리나라의 전반적 재난안전관리의 지침을 제공하는 계획으로서, 지난 1차 기본계획의 성과와 한계를 진단하고, 최근의 국내외 상황을 반영하여 수립된 것이다. 이 계획은 선진일류국가의 건설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비전을 이어 받아 ‘OECD 수준의 안전선진국 실현’을 비전으로 선정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안전 수준이 주요 선진국들에 비하여 미진하다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되었으며 국가의 주요 안전지표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관리를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로서 선진 안전문화 정착, 안전한 국민생활환경 보장, 재해로부터 기업안전 확보, 안정적 국가기반체계 유지, 효율적인 재난관리체계 운영 등을 정하였다.

안전사회 위해선 ‘참여’ 필수
2차 계획을 살펴보면, 1차 계획의 자연·인적 재난 대응 중심의 관리범위가 ‘전반적 안전 분야’로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차 계획이 ‘통합적 재난대비대책의 구축’ 및 ‘신속한 재난대응대책 강화’ 등을 통해 정부 조직의 일사분란한 명령과 통제 시스템의 강화를 강조한 반면, 이번 2차 계획은 재난안전관리에 있어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강조한 측면이 크다. 결국 이제 안전 문제는 정부, 재난관리책임기관만의 책임이 아닌, 기업과 국민 모두의 책임이며, 모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 계획에서는 정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안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안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지식 및 생활태도가 필요하다는 안전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의 안전의식을 증진시키고, 이를 위해 다양한 홍보와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 올해부터 갑자기 논의된 것은 아니다. 이미 정부와 각종 민간사회단체들은 안전문화 증진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 교육 등을 수행해 왔다. 또한 ‘위기탈출 넘버원’ 등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TV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대중들의 안전의식을 높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안전사고율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부끄러운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2000년부터 교통사고 대폭 감소
우리나라 안전사고의 경우 교통사고 사망자는 그간의 노력에 의해 획기적으로 감소했으나, 추락 등 산업재해는 큰 변화가 없으며, 자살 사망자는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추이가 주는 함의는 매우 크다. 특히 교통사고의 경우, 정부를 중심으로 한 제도적 노력과 광범위한 문화의 조성이 효과적이었던 사례로 볼 수 있다. 2000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만명이 넘었다(1996년이 1만2653명으로 최고). 월드컵을 앞두고 2002년 9월 국무총리실에는 안전관리개선기획단이 설치되어 총괄과 조정 역할을 수행했고, 유관부서인 건설교통부와 경찰청은 집중적인 단속과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병행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2001년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8100여명으로 줄었고, 2003년에는 7212명, 2004년에는 6563명, 그리고 작년에는 5838명으로 96년에 비하여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물론 이러한 숫자는 아직도 OECD 평균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소율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제도적 노력과 문화 운동이 결합할 경우 안전사고 예방에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안전문화 위한 제도 마련해야
반면 아직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수 24명으로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이다. 이는 OECD 평균(5.1명)에 비해 5배가량 높은 수치이다. 산업현장에서는 근로자들에게 안전이 제일이요, 안전한 작업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 꽤 많이 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문제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제도적 노력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노동자들에게 안전을 중시하라는 계도적 홍보에만 치중하고 있지, 위험한 작업 환경을 방치하고 있는 사업주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2008년 1월7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2000코리아 냉동창고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40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 당시, 40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이었음에도 사업주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이는 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자의 ‘안전불감증’을 키우게 만드는 극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즉, 안전에 대한 투자는 몇 푼의 벌금으로 대체하고 돈만 벌면 된다는 경영자들의 생각이 이러한 대형사고의 진정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진정한 안전문화의 확산은 제도적 노력과 병행되어야 한다. 안전에 대한 책임을 안전불감증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과 노동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안전하지 않다면 경영상의 이익이 없다는 것을 기업들이 깨달아야 하며, 안전하지 않다면 국가발전도 없다는 것을 관료들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안전문화가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그러나 자살 문제 역시 다른 안전사고 문제와 같이 제도적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며, 실제 외국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성공사례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