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환경계획(UNEP)과 환경부 등이 공동주최한 ‘제4차 환경을 위한 글로벌기업정상회의(2010 B4E)’가 지난 4월21~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글로벌 녹색경제로 가는 길’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회의엔 국제기구와 세계 30여 개국의 기업, 정부, NGO 관계자 90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 둘째 날인 22일 저녁 ‘2010 지구환경대상’ 시상식이 열렸는데, 수상자 6명 가운데는 지난해 수중내각회의를 개최한 모하메드 나시드(Mohamed Nasheed) 몰디브 대통령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몰디브는 스리랑카에서 남서쪽으로 약 650㎞ 떨어진 인도양의 섬나라다. 산호섬 1192개로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200여개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가 40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로서,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라 불릴 만큼 깨끗하고 조용한 자연환경과 아름답고 다양한 해양생태계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신혼부부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5년 7월26일 영국에서 독립한 몰디브는 세계적 휴양지로 알려진 탓에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몰디브 관광부에서 집계한 2008년 외국관광객수는 68만3000명에 이른다. 이처럼 몰디브는 오래 전부터 관광지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이유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근에 몰디브는 관광지로서보다 바닷물에 잠기고 있는 나라로 이름을 떨치는 중이다. 남태평양에 자리한 섬나라 투발루와 함께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몰디브는 단지 2050년까지 전 국토가 바닷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되는 투발루에 견줘 사정이 조금 나을 뿐이다. 국토의 평균고도가 해발 2.1m(투발루는 1.5m)에 불과한 몰디브에 대해 유엔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2007년 펴낸 보고서에서 2100년이면 바닷물에 잠겨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가장 먼저 소멸될 투발루에 이어 두 번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라가 몰디브인 셈이다.

수중회의 열어 지구온난화 경고
국토가 바닷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면서 지구온난화 문제는 몰디브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됐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데 앞장서기 시작했다. 나시드 몰디브 대통령이 올해 지구환경대상을 수상한 것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앞장서 온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1967년 태어난 나시드 대통령은 2008년 10월28일 몰디브 역사상 처음 치러진 민주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41세 젊은 나이에 1978년부터 30년간 집권한 독재자 마우문 압둘 가윰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몰디브 최초로 민주정권을 세운 것이다.

그는 2008년 11월11일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부터 바닷물에 잠겨가는 몰디브의 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몰디브란 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선인 시절 그는 몰디브가 완전히 바닷물에 잠길 것에 대비해 새로운 땅을 사들여 국민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특히 나시드 대통령은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휴양지 몰디브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발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지난해 10월17일 개최한 ‘수중 내각회의’가 그것이다. 이날 그는 몰디브의 정부 각료 13명과 함께 잠수복을 입고 산소탱크를 짊어진 뒤 기리푸시섬 앞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6m 아래 산호로 뒤덮인 푸른 바다 속으로 내려가 수신호로 회의를 진행했다. 몰디브 각료들은 이날 수중회의에서 세계 각국을 향해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서명했다. 그들이 방수펜으로 서명한 결의안에는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날 열린 수중 내각회의는 철저히 기획된 이벤트였다. 수중회의를 위해 나시드 대통령과 장관들은 스쿠버 교육을 받았다. 어떤 장관들은 두 달간이나 훈련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회의 하루 전 예행연습을 거쳤다. 지금도 몰디브 정부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수중 내각회의에 대한 내용과 당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일회성 이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디브 정부가 기획한 수중 내각회의는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을 접한 세계 여러 나라 국민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재미있어 하면서도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에 대해 나시드 대통령은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수중회의를 기획했다”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데 성공하는 등 반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탄소중립국’ 만들겠다”
취임 뒤 탄소 배출을 줄여야 몰디브와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 나시드 대통령은 수중 내각회의 개최에 앞서 몰디브를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국’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혀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해 3월15일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환경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탄소 없는 산업구조를 만드는 데 몰디브가 앞장설 것”이라며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탄소중립국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탄소중립이란 경제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제로(0)’가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탄소중립국이 되려면 탄소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나시드 대통령은 풍력·태양광 발전소, 코코넛 껍질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 등을 짓는 데 1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몰디브)같이 작은 나라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계에 큰 영향을 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다른 나라들에 모범이 될 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4월 환경을 위한 글로벌기업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을 때도 탄소중립국을 지향하는 몰디브의 노력에 대해 발표했다.

당시 회의에서 그는 “앞으로 탄소가격 설정과 청정기술에 대한 투자 증가 등 녹색혁명을 통해 세계의 지정학적 구조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2020년까지 ‘탄소중립국’을 만들려는 몰디브의 노력이 세계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는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로, 변화란 불편한 불확실성뿐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뜻한다”는 주장을 폈다. 수중 내각회의 개최와 탄소중립국 선언뿐 아니라 그는 지난해 9월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캠페인 광고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광고는 나시드 대통령이 아름다운 몰디브 해변에 책상을 놓고 일을 하다가 천천히 바닷물 속으로 잠긴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국내 신문과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는 현실적인 위협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내가 직접 그 심각성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9월7일(현지시각) 몰디브의 리조트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1인당 하루 3달러씩 환경세를 받도록 하는 세제 개편안을 만들어 의회에 제출했다. 이 돈으로 유럽연합(EU)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관광객들이 타고 오는 항공기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과 기후변화 대응 협력키로
나시드 대통령은 올 4월 박연수 소방방재청장과 만나 기후변화 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나시드 대통령이 지구환경대상을 받은 지난 4월22일 나시드 대통령의 요청으로 박연수 청장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두 사람은 오찬을 함께 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해 온실가스 줄이기, 지진대비 등에 대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날 박연수 청장은 나시드 대통령의 지구환경대상 수상을 축하하고, 지구온난화 최전선에서 싸우는 열정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청장은 오는 10월25~2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제4차 UN 재해경감 아시아 각료회의(AMCDRR)에 참석해줄 것을 나시드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박 청장은 5월11일 UN 재해경감 아시아 각료회의에 대한 기자브리핑에서 나시드 대통령과의 만남을 소개해 관심을 모았다.

박 청장은 이날 “나시드 대통령과 오찬을 하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 대응을 위한 정보공유와 기술교류 등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특히 나시드 대통령이 국내에서 개발한 태풍진로에 따른 피해예측 시스템(방재정보시스템)의 무상원조를 희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몰디브의 10월 각료회의 참가도 확정됐다”고 덧붙였다.

나시드 대통령은 2008년 11월 취임 뒤부터 줄곧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돌며 바닷물에 잠기고 있는 몰디브 사정을 알리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0 지구환경대상 수상자로 뽑혔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엔 같은 공로로 스웨덴에서 ‘안나 린드 상’을 받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으로부터 ‘환경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