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포커스>가 매월 국내외 방재관련 연구개발 동향이나 기술(시스템) 및 제품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 ‘R&D’ 꼭지를 새로 선보인다. 이를 통해 방재기술 개발·보급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번호엔 지난 6월호에 이어 또다시 국립방재연구소 등이 개발중인 ‘산지 돌발홍수 예측시스템’에 대해 다루기로 했다. 계절과 재난유형 등을 감안해 6월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산간지역 돌발홍수의 위험과 시스템 개발 상황, 미래 계획 등을 자세히 소개하기 위함이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6월말부터는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됐다. 무더위가 이어지면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물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한여름 우리나라 이름난 계곡은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름 없는 도시주변 계곡도 주말이면 가족단위 피서객들로 북적이곤 한다. 그러나 무더위와 장마가 겹치는 시기에 맞춰 산간계곡을 찾는 것은 때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8월 산간계곡에선 집중호우에 따른 인명피해가 거의 매년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산간계곡 인명피해
여름 휴가철이 한창이던 1998년 7월31일 한밤중부터 지리산 일대엔 국지성 집중호우가 퍼부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지리산 골짜기마다 자리한 여러 계곡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을 찾은 야영객들로 붐비던 야영장은 폐허로 변했다. 전날 밤부터 쏟아진 집중호우로 갑자기 계곡물이 불어나 야영객들을 휩쓸면서 야영객과 지역주민 등 9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날 하룻밤 새 262㎜에 이르는 ‘물폭탄’이 떨어진 경남 산청 대원사계곡에서만 실종 1명을 포함해 23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당시 지리산 계곡들은 ‘죽음의 골짜기’와 다름없었다. ‘지리산 대참사’라고도 부르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리산을 비롯한 우리나라 유명 산간계곡 곳곳에 자동우량경보시스템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게릴라성 집중호우’란 말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998년 지리산 대참사뿐 아니라 국내에선 매년 국지성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인명피해도 매년 반복되는 상황이다.

2년 전 7월에도 경북 봉화군에서 8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2008년 7월23부터 26일까지 봉화군 일부 지역은 시간당 66㎜, 하루 228㎜의 강우량을 기록했는데, 7월25일 봉화군 춘양면 의양1리와 서벽4리 등에선 전날 밤부터 퍼부은 집중호우에 이은 산사태와 홍수로 마을주민 등 4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되고 말았다. 7월25일 의양1리에서는 산사태로 주택이 파묻히면서 주민 2명이 매몰돼 목숨을 잃었다.

서벽4리에서도 토석류가 마을을 덮쳐 주민 2명이 실종되는 참사를 빚었다. 특히 춘양면 애당리 참새골에선 도로가 끊기면서 서울에서 기도하러 왔던 무속인들이 탄 승합차가 계곡물에 휩쓸려 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이밖에 지난해에도 경기도 곡룡천 등에서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져 불어난 계곡물에 야영객 3명이 떠내려가 사망하기도 했다.

돌발홍수 위험 3시간 전 예측

	2008년 7월말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하루 2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해 마을주민 등 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올 여름도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빈번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산간계곡을 찾은 야영객과 행락객의 인명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전국 산간계곡 31곳에 자동우량경보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특별교부세(특교세) 31억원을 지원했다. 매년 산간계곡 유원지 등에서 반복되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조처였다. 피서객과 행락객이 많이 찾는 산간계곡에 자동우량경보시설을 확충하는 일은 분명 여름철 인명피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동우량경보시설만으론 부족하다. 산꼭대기와 중하류 계곡사이에 강우량 오차가 있을 수 있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돌발홍수를 예측하고 위험정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방방재청 국립방재연구소(소장 정상만)에선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 2008년 11월부터 산지지역에 대한 돌발홍수예측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말 이 시스템 개발을 마치면 여름철 국지성 집중호우에 따른 돌발홍수로 인한 인명피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5월28일 오전 방재연구소 심재현 연구실장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산지 돌발홍수 예측시스템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심 실장은 “올 연말까지 산지 돌발홍수 예측시스템 개발을 끝마칠 계획”이라며 “돌발홍수 위험을 3시간 전에 예측하고, 돌발홍수 위험지역 담당공무원에게 휴대전화와 이메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설명했다. 심재현 실장과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방재연구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시스템은 기상연구소와 함께 개발하는 것으로 방재연구소는 홍수 분석 및 예·경보 기술 개발을, 기상연구소는 강우예측기술 개발을 맡고 있다.

스마트폰 통한 정보 제공 계획

	지난 1998년 여름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인해 90여명의 인명피해가 생긴 ‘지리산 대참사’ 당시 산꼭대기에서 밀려온 토석류에 의해 휴지처럼 구겨져버린 자동차 모습.

산지 돌발홍수예측시스템 중 방재연구소가 담당한 홍수 분석 및 예·경보 기술 개발을 위해 재연구소는 먼저 전국에 흩어진 돌발홍수 위험지구를 선정하기 위해 전국을 3654개 지구로 나누고, 각 지구별 위험도를 분석했다. 그리고 돌발홍수 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이는 350여개소의 위험지구를 추려냈다. 위험지구 선정은 미리 정해둔 여러 가지 기준에 따랐다. “어떤 기준에 맞춰 위험지구를 선정했느냐?”는 물음에 심 실장은 인명피해 방지가 최우선이란 생각에 첫 번째로 여름철 계곡을 찾는 행락객 수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인적 기준 외에 해당지역의 토양 성질과 유역 경사도 등 3가지 기준에 따라 위험지구 350여개소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심 실장은 또 “GIS기술과 수치정보자료를 바탕으로 해당지역의 지형학 및 홍수량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위험지구를 선정했으며, 현장조사 등을 병행해 올해 말까지 위험지구 300여곳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 덧붙였다. 현재 방재연구소는 위험지구 350여개 지역 중 140개 지구를 대상으로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면서 예측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중이다.

예·경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방재연구소는 돌발홍수 예·경보 발령기준이 되는 홍수모형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기상청의 강우예측(MAPLE 모형)자료와 지상 강우계, 자동우량경보시설 등을 자동으로 연계해 예측정확도 개선연구를 병행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해 심 실장은 “결국 신뢰할만한 예·경보 정보 제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방재연구소는 산지 돌발홍수예측시스템이 완성되면 내년부터 300여개 이상의 위험지구에 대해 돌발홍수 위험을 3시간 전에 미리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는 정보를 해당지역 담당공무원과 이장 등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그밖에도 방재연구소는 최근 빠르게 확산중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모든 국민에게 돌발홍수 정보를 전달하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1999년 6월27일(왼쪽)과 1984년 9월14일(오른쪽) 나가노현 기소강에서 돌발홍수로 인해 토석류가 휩쓸려 내려오는 모습.

이에 대해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방재연구소 정재학 박사는 “돌발홍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응용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앱스토어에 올려 국민 누구나 스마트폰에 내려 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이어서 “돌발홍수 예측 정확성을 높이는 작업을 앞으로 꾸준히 진행하는 동시에 스마트폰을 활용한 정보 전달 서비스 등을 구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