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캔자스주의 작은 농촌도시 그린스버그(Greensburg City) 주민들은 3년 전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강력한 토네이도(회오리바람)가 그린스버그를 휩쓴 것이다. 강력한 토네이도에 강타당한 그린스버그는 시청, 학교 등을 비롯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될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현재 그린스버그는 미국 최초의 친환경도시로 주목 받고 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재앙이 그린스버그를 덮친 것은 2007년 5월4일 금요일이었다. 이날 저녁 넓디넓은 미국 땅 한가운데 자리한 캔자스주 남서쪽 카이오와 카운티(Kiowa County)의 작은 농촌도시에 가장 강력한 5등급(EF5) 토네이도가 휘몰아쳤다.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 그린스버그는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도시라곤 하지만 인구가 1400명밖에 안 되는 그린스버그에선 이날 12명이 목숨을 잃고 59명이 다쳤다. 재산피해도 엄청났다. 학교와 병원, 900채가 넘는 주택 등 건물의 95%가 파괴되면서 그린스버그는 폐허로 변했다. 순식간에 불어 닥친 자연재해에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된 셈이다.

‘그린타운’ 재건 프로젝트 착수
그린스버그 주민들은 갑자기 찾아온 대재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친구, 이웃이 죽고 다쳤을 뿐 아니라 보금자리와 기반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는 대참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낙담만 하지 않고 재건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그린스버그를 자연친화적인 ‘그린타운’으로 재건하는 데 뜻을 모았다. 비록 작은 농촌마을에 불과하지만, 녹색도시 조성은 미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시도였다.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된 사건을 계기 삼아 친환경도시로 ‘환골탈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주민들은 현지 당국자, 사업자 등과 함께 ‘그린스버그 그린타운(Greensburg GreenTown)’이란 비영리단체(NPO)를 만들었다. 그린스버그 그린타운은 ‘보다 좋고, 보다 강하고, 보다 그린으로’란 슬로건을 내걸고 재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들은 그린스버그를 더 활기차고 살기 좋은 친환경도시로 재건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그린타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미국정부도 상당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전국재생에너지연구소(NREL)가 그린타운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데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비영리단체인 그린스버그 그린타운과 NREL 등이 마련한 재건 계획의 뼈대는 태양열 및 풍력발전을 통해 청정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새로 짓는 주택과 상업용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현재 기준보다 각각 40%, 30% 씩 줄이는 것이다. 또 4000평방피트(약 372m²)이상 모든 공공건물은 미국 그린빌딩기준(National Green Building Standard)을 채택해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인증을 받기로 했다. LEED는 미국 그린빌딩위원회(USGBC)가 주관하는 친환경빌딩 인증제도다.

풍력발전 통해 청정에너지 공급
미국 연방정부는 올해 9월까지 3년간 255만 달러를 투자해 그린스버그 재건을 돕고 있다. 유지 가능한 친환경 커뮤니티 건설에 필요한 에너지 플래닝, 정책 개발 등을 그린타운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정부와 기관,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린스버그 모델을 미국 내 다른 도시로 확대시킨다는 게 미국정부의 목표다. 강력한 토네이도에 강타당해 초토화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린스버그는 캔자스 대평원에 자리해 바람이 많은 지역이다.

이에 미국 에너지부는 풍력발전이 그린스버그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존 디어(John Deere)사가 그린스버그 그린타운을 위한 풍력발전소 건설을 제안했다. 존 디어는 세계 최대의 농업용 트랙터 생산회사로 최근엔 미국 농촌지역에서 풍력발전사업을 활발히 펴고 있다. 이 회사의 풍력발전사업은 그간 트랙터를 만들어 공급해오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농민들과 떼려야 딸 수 없는 모델이다.

농민 또는 농민단체의 땅에 존 디어와 투자자들의 돈으로 풍력발전소를 짓는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전기를 지역 전기회사에 팔아 생기는 수익은 존 디어와 투자자, 농민이 나눠 갖는다. 발전소 부지를 내놓는 농민은 상징적으로 사업비의 0.1%정도만 내면 된다. 그린스버그 풍력발전소 건설에도 이 모델이 적용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존 디어사가 지어서 올 봄 상업운영을 시작한 ‘비티아이 그린스버그(BTI-Greensburg)’는 그린스버그 농민 소유의 땅에 농무부의 농촌개발 프로그램 자금으로 건설되고 존 디어사가 운영하는 풍력발전소다. 인도 수즐론(Suzlon)사의 101.25㎿짜리 풍력터빈이 설치된 이 발전소는 4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해 그린스버그의 모든 주택과 상업 및 공공건물에 청정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린스버그 주민들이 쓰고 남은 전기는 지역 전력회사인 캔자스 파워 풀(Kansas Power Pool)에서 장기간 구입하기로 했다.

미래형 그린타운으로 탈바꿈 전망
그린스버그 그린타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하고 풍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친환경에너지가 도시 전체에 제공된다. 도로에 설치된 가로등은 전기를 적게 쓰는 LED 조명으로 바뀌었다. 새로 지어지는 병원 등 대형 건물의 냉난방은 지열을 이용하기로 했다. 토네이도에 의해 파괴된 뒤 새로 건축허가를 받은 180채의 주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에너지효율이 높은 주택으로 인증 받았다.

이 주택들을 짓기 위해 그린스버그 주민들은 기부금을 모았고 연방정부와 주정부,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다. 미국 에너지부는 주택 건설에 참여한 건축업체들을 대상으로 자재와 기술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또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을 통해 에너지효율 방법을 공개 교육하고, 40% 에너지 절약 주택을 건설하는 업체에겐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에너지효율 인증주택 건설에는 주민과 건설사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 주택은 기존 주택에 견줘 매월 평균 42달러에 상당하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축된 주택 33채도 2003년 대비 25% 가량 에너지를 절감하게 된다. 주택과 함께 그린스버그에 새로 지어지는 상업 및 공공건물도 최대한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설계됐다. 토네이도 피해 뒤 그린스버그에 지어졌거나 들어설 상업용 건물 가운데 약 30개가 기존 건물에 견줘 에너지 사용량을 30% 절감함으로써 LEED 인증을 받을 예정이다.

이미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아트센터, 존 디어 딜러십 등의 건물은 LEED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상태다. 특히 시청사, 병원, 학교 등 공공건물의 에너지 절약 목표는 40~50%에 이른다. 토네이도가 강타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재난의 도시가 미국 최초의 그린타운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대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재난을 당한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고 중앙정부와 시정부, 기업 등이 모두 참여해 친환경도시를 건설하는 첫 사례인 탓으로 풀이된다.

그린스버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에서 가장 LEED 빌딩이 밀집한 도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그린스버그처럼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폐허로 변했던 도시 전체를 에너지 절감 도시로 재건하는 경우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린스버그는 재난으로 파괴된 다른 도시들이 그린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앞으로 그린스버그 사례를 다른 도시로 확대 적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