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선진국을 가보면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재난관리 전문가가 전공을 살려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아직까지 대부분 토목·건설 등을 전공한 이들과 관련학과 교수들이 재난안전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국내 한 재난관리 전문가는 이 같이 지적하며 국내에서도 다양한 학문배경을 가진 이들을 재난(안전)관리 전문가로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미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재난관리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게 시급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재난관리의 핵심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첨단 IT를 활용해 도시방재시스템을 개발중인 한 방재연구기관 연구책임자는 “재난을 관리해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 최첨단 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할 전문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재난관리 전문가가 아니면 효과적인 방재시스템을 개발하기도 쉽지 않다. 재난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재난을 막기 위한 방재시스템이 방재선진국 등의 다른 방재시스템을 흉내 낸 기계에 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선 절대로 효과적인 재난안전 정책 및 시스템을 개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또 “하물며 국토가 좁은 국내에서도 지역마다 재난안전 문화가 다른데, 국가와 국가 사이엔 오죽하겠느냐”며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선진국 흉내만 낸다면 죽도 밥도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대학·대학원 수준 교육 필요
방재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체계적인 재난관리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대학원 수준의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대학이 소방방재학과·안전공학과 등을 개설했다. 그러나 이들 학과에선 소방과 산업안전 위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수요가 있는 소방관 및 산업안전 관리자 육성에 주력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비교적 최근엔 강원대 삼척캠퍼스(옛 삼척대학교) 소방방재학부에서 방재안전공학과 재난관리공학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다.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인천대 위기관리연구센터 등에서도 나름 재난 및 위기관리 전문가 육성에 힘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대학원 수준에서 재난관리 전문가를 육성하는 경우는 국내에서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인 셈이다. 게다가 관련분야 전문가가 적은 탓에 교수 인력도 넉넉지 못한 환경이다.

반면, 방재선진국은 재난관리 전문가 육성을 위한 대학·대학원 교육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 교토대 방재연구소(DPRI)에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공부했던 김태민 박사는 교토대 방재연구소에선 토목, 지질, 기후, 건축 등 다양한 교수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교토대 방재연구소의 경우 정교수와 조교수, 조수(전임강사)을 합해 토목 쪽 교수인력만 300명에 이른다”면서 “대학원에선 한 과목당 교수가 3명씩 수업에 들어와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토목공학뿐 아니라 환경, 사회학, 도시공학 등을 종합해야 방재가 가능하다. 방재전문가 양성을 위해선 다양한 전공을 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토대 방재연구소에서 항만 및 해양 수문관리를 전공한 김 박사는 삼성방재연구소, 삼성에버랜드 방재사업팀 등을 거쳐 현재 한국수자원공사 경인 항만건설단 책임위원으로 경인 아라뱃길 현장에서 방재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움직임 있었지만 흐지부지
국내에서도 과거 재난관리 전문가 양성을 위한 연구와 움직임이 있었다. 우선 2005년 김근영 강남대 교수(도시공학과) 등이 수행한 ‘방재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장기발전전략 수립 연구’가 눈에 띈다. 소방방재청 연구용역사업으로 2005년 6월20일부터 10월17일까지 수행된 이 연구엔 책임연구원인 김근영 교수를 비롯해 김진욱 서울산업대 교수(건축학부)와 정덕훈 동국대 교수(경영정보학)가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연구는 세이프 코리아 21대 발전과제 가운데 ‘재난관리 지도자 양성 및 국민교육 훈련강화’ 분야에서 방재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을 위한 장기발전전략 마련이 목적이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국내 방재관련 전문인력 실태조사 △선진 해외 방재전문인력 양성 및 구체적 활용실태 조사를 통해 △방재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방안을 마련하고 △방재전문인력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했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연구팀은 방재전문인력 양성방안으로 국내 방재교육기반 확충방안과 학·협회를 통한 민간부문 방재전문인력 양성방안 등을 제시했다. 방재관련 자격증 신설 방안도 제시했는데, 우리 실정에 적합한 유형별, 단계별 신설방안을 마련하고 신설자격증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방재전문인력 활용방안으로는 해외 주재 방재전문인력을 활용해 국내 방재정책 자문지원 등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방재전문인력 장기발전전략으로 방재전문인력의 구체적 정의 및 분야별 가이드라인, 방재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방안에 관한 제도화방안, 전문 인력 양성 및 활용에 관한 종합 마스터플랜 마련을 통한 정책방향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연구결과는 대부분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학의 방재교육 시스템
김근영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2005년 당시 미국의 방재관련 고등교육기관은 전문학사과정이 26개였고, 13개 대학이 학사과정을, 26개 대학이 부전공과 연계전공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또 30대 대학이 32개 석사과정 두었고 박사과정을 둔 7대 대학은 대부분 복합전공 형태였다. 그밖에도 41개 교육기관이 방재 또는 재난상황관리와 관련된 독립 교육과정을 운영했는데, 45개 대학은 방재 또는 재난상황관리 관련 과목을 1개 이상개설하고 있었다고 한다.

위기관리와 관련해선 25개 대학이 국토안보테러핵심기반체계 보호와 관련된 교육과정을 운영했고, 7개 대학은 국제 재난관리 및 구호교육과정을 운영했다. “겹치는 교육과정을 빼더라도 2004년 현재 120개 대학이 방재관련 교육과정을 개설했고 46개 대학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준비중”이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연구팀이 조사한 당시 미국의 재난상황관리 및 방재관련 전문학사 학위의 주요 교과목은 대비·방어, 경감, 대응(구조·지휘·중재), 복구, 법규, 조직, 위험, 커뮤니케이션(리더십·의사결정·관계), 테러리즘, 국제(지리·인종 등), 안전관리, 응급관리, 재난관리 등이었다. 또 정책(정부·행정·기관), 미래·도전, 응급 및 재난기초, 재정·경제·경영, 환경·자연·기상·생태, 훈련·교육, 봉사·인적자원·기부, 스트레스·트라우마·사후관리, 국토방위, 기초과학·수학, 소방, 운영연속성계획(BCP), 산업위기·평가·분석, 지리정보시스템(GIS), 인문·사회·윤리학 등 재난관리 전 분야를 포함하고 있었다. 게다가 재난 대응 복구, 시행과 자원관리, 훈련계획과 평가, 의사결정과 문제해결 등을 복합교과목으로 개설했다.

일본 대학의 방재교육 시스템
연구팀은 치바과학대학 위기관리학부, 교토대 방재연구소, 도쿄대 도시기반안전공학국제연구센터 등을 통해 일본의 방재교육 시스템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1951년 설립된 교토대 방재연구소는 애초 재해의 이공학적 기초연구(제1부문), 수해방어 종합연구(제2부문), 지진·풍해 등 재해방어·경감 종합연구(제3부문)의 3부문으로 출발했다.

교토대 방재연구소는 1993년 16개 연구부문 4개 연구센터 7실험 및 관측소로 확대됐고,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지진) 뒤인 1996년에는 재난에 대한 학리연구 및 종합방재연구를 위해 이공학적 연구에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강화했다. 2005년 현재는 종합방재, 지진재해, 지반재해, 수해, 대기재해 등 5대 연구부문과 재해관측실험, 지진예지, 화산활동, 수자원, 거대재해, 사면재해 등 6개 연구센터를 가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방재연구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치바과학대학 위기관리학부는 방재시스템학과·환경안전시스템학과·위기관리시스템학과 3개 학과로 이뤄졌다. 방재시스템학과는 ‘안심하게 살 수 있는 평온한 일상생활 창출’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이를 위해 재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재해 발생원인과 대규모 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메커니즘을 명확히 밝히고, 재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방재시스템학과에선 특히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는 다양한 재해에 대해 △도시 안전 △자연 안전 △교통·정보 안전 △의료 안전 등 4개 분야의 방재를 공부한다. 여기서 방재란 재난발생 원인, 대규모 재난으로 발전하는 메커니즘, 재난·방지 예방을 위한 시스템 창출 등을 이른다. 전공과목은 방재시스템과학, 환경안전시스템과학, 위기관리시스템과학, 매뉴얼작성론, 위험도관리 등 공통기초과목 외에 정보학, 교통수송재해학, 항공우주재해학, 풍수재해학, 내진·면진학, 연소·화재학 따위가 있다.

도쿄대 도시기반안전공학국제연구센터(ICUS·INCEDE)는 도시기반시설 정비와 유지관리를 포함한 안전공학 연구를 목적으로 2001년 4월 설립됐다. 주요 연구과제는 지속가능한 엔지니어링, 동시방재안전공학, 도시정보 등이다. 이 연구센터 생산기술연구소에서는 도쿄대 공학계와 이학계 대학원생을 받아들여 연구자의 자질을 높이고 있는데, 특히 학과간 벽을 넘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폭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도시기반안전공학국제연구센터 석사과정 대학원 교과과정은 도시기반안전공학, 원격감시, 방재행정학, 지속가능한 도시환경공학, 지구수환경시스템, 건설재료관리, 도시기반정보공학 등이다.

재난관리 전문가 양성 제도화 필수
김근영 교수팀은 ‘방재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장기발전전략 수립 연구’를 통해 국내에서 방재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활용하려면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국내 교육관련법령과 자격증관련법 등 “법률검토 결과 현행 법률체계에서는 재난관리 관련 교육을 맡을 정부부처가 없으며, 방재교육에 대한 근거가 미약”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관련법에 방재 관련 교육조항을 넣고, 시행령 등에 교육을 맡을 정부부처를 지정해 방재교육법을 제정하면 현행 법률에 의해 방재 전문교육기관 설립·지원, 교육과정 개발 등이 기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서 방재교육법으로 ‘방재교육진흥 및 방재전문인력육성에관한법률(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방재교육 진흥을 위한 기반확충과 전문 인력 육성을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김근영 교수팀뿐 아니라 박기춘 의원(민주당) 2007년 9월 펴낸 정책자료집 <대국민 방재의식 제고 및 역량강화를 위한 방재안전교육 및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에서 방재 전문인력 양성 방안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특히 방재안전교육과 전문인력 양성을 결합한 ‘대국민 방재안전교육 활성화 및 전문인력 양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시한 점이 관심을 모은다. 이를 통해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방재안전교육 실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 이었다.

박 의원은 이 법률(안)에서 △방재안전 교육 활성화를 위한 법적기준 마련 △방재안전 교육 대상을 명확히 규정 △교육방법·교재개발 등 교육커리큘럼 연구·개발 △방재안전 교육전문가 양성·활용 △재난·방재분야 전문기술인력 육성대책 강구 등 9개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사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