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주최한 ‘안전한 사회만들기’ 사이버 문학공모전에서 수필·논술 부문 대상작이 ‘빨리빨리 한국’과 안전문화였습니다. 이 글을 쓴 최용 씨는 조선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부에서 일하며 겪은 일화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특히 최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월드컵 축구경기를 예로 들면서 “느긋한 성격을 가진 남미 선수들이 문전에서 차분히 쉽게 골을 넣은 장면을 보며 한때 우리나라 축구가 문전에서 허둥지둥하고 침착하지 못하여 골을 넣지 못한다며 비판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박힌 한국 축구선수들이 골문 앞에서 허둥대다가 실수를 연발하곤 했던 실제 사례를 ‘빨리빨리 한국’과 안전문화란 주제와 연결시킨 건 매우 신선하고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고객인 외국 선주사의 한 감독관과 휴게소에서 겪었던 일을 소개했는데, 기자도 몇 해 전 비슷한(?)일을 겪었습니다.

2007년 10월 터키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이스탄불을 거쳐 터키 중부 옛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땅에 있는 카파도키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처음 보는 터키 사람들로부터 ‘빨리빨리’란 우리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이름 있는 관광지에선 어김없이 빨리빨리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패키지 관광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둘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터키를 찾는 한국관광객이라면 대부분 한번쯤 들러봤을 괴레메란 시골도시에서 외국인보다 한국의 젊은 배낭 여행자들이 더 많았던 값싼 호텔(?)에 짐을 풀고 하루 동안 주요관광지를 도는 여행상품을 현지 여행사에 신청했습니다. 그날 여행한 20여명의 전 세계 여행객 가운데 홀로 혹은 친구와 터키를 찾은 한국관광객이 거의 반이나 됐습니다.

여행가이드가 아주 잘생긴 터키 청년이었는데, 우리를 보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더니 웃으면서 연신 빨리빨리, 빨리빨리를 외치더군요. 처음 들었을 땐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그런데 그뿐만이 아닌 게 문제였습니다. 그날 들렀던 여러 관광지에서 터키 가이드들로부터 수없이 빨리빨리란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인 줄 알면 그들의 입에서 어김없이 빨리빨리란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이튿날엔 아내와 함께 스쿠터를 빌려 타고 마을 주변을 둘러봤는데,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에선 여지없이 빨리빨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값싼 기념품을 파는 터키 노점상들도 모두 빨리빨리란 우리말을 아는 듯 했습니다. 나중에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마음뿐이더군요. 터키 사람들에겐 자주 들었던 한국말이어서 친근감을 표시하려 했을 수도 있겠지만, 듣는 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빨리빨리가 터키 관광지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말이 된 것은 터키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한국관광객들이 얼마나 자주 빨리빨리란 말을 했으면, 이정도일까? 하는 궁금증까지 생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터키 말곤 다른 나라를 여행한 적이 없어 다른 나라에서도 빨리빨리란 우리말을 자주 듣게 되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유쾌하지 못한 기억인 건 분명합니다.

‘빨리빨리 문화’는 많은 재난안전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안전의 적’입니다. 때론 무서운 재앙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됐던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부실공사에 따른 대참사를 빚었습니다. 이제 우리만의 ‘빨리빨리 문화’를 고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