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안전공단은 우리 사회의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2010 ‘안전한 사회만들기’ 사이버 문학공모전을 마련했다. 5월24일부터 6월25일까지 진행된 사이버 문학공모전 결과 수필·논술 부문 대상작 ‘빨리빨리 한국과 안전문화’를 싣는다. 대상으로 뽑혀 고용노동부장관상과 상금 100만원을 받은 최용 씨는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부에서 일하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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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우리회사 고객인 외국 선주사의 한 감독관과 현장점검을 하고 잠시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 앉아 있었다. 그때 우리 바로 앞에서 우리 회사 직원이 커피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꺼내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그 외국인 감독관이 뭔가 신기한 것을 목격한 것 같은 얼굴로 우리 회사 직원이 커피를 뽑는 행동을 재연해 보이며 웃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 버튼을 누른 뒤 종이컵이 내려오자마자 손으로 종이컵을 잡고 커피가 나오는 것을 고개를 숙여 보고 있다가 커피가 다 나오자 재빨리 종이컵을 꺼내가는 장면 이었다. 평소 그런 장면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별다르게 느끼지 않았던 내가 그 외국인의 지적에 ‘한국사람 성질이 정말 급하긴 급하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왜 커피가 다 나올 때 까지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고 뜨거운 종이컵을 잡고 있는 것일까?

안전사고 대부분 ‘서두르다’ 발생
기업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는 그 후 한국 사람의 빨리빨리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두르는 행동은 정말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자주 볼 수가 있었다. 한번은 제주도 여행을 할 때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여객선을 타고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제주항에 정박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무거운 짐을 메고 출구에 나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배가 정박하고 승선다리를 설치하는데 적어도 10분 이상은 걸린 것 같은데 모두들 그런 수고를 감내하고 서서 기다리는 인내가 대단하게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닫힘’ 버튼을 여러 차례 누른 다거나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10분도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줘요” 한다거나 자동차 운전 중에 신호대기 중 녹색등이 켜지기도 전에 황색등에 출발하는 행위 등 모두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만약에 이러한 서두르는 행동 습관이 작업장에서도 일어난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실제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 작업장에서도 깊게 뿌리내려 있는 것 같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여 사고내용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의 사고가 서두르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비를 조작하면서 주변을 확인하기 않거나, 안전한 통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깝게 가려고 위험한 작업장을 가로질러 가고, 전기 보수작업을 하면서 전원을 차단하지 않고 무리하게 작업하는 행위 등은 ‘빨리빨리’에 의해 발생하는 전형적인 사고로 볼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게차와 같은 장비를 운전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후진을 할 때 후방을 먼저 확인하고 후진기어를 넣고 엑세레이터를 밟아야 하는데 이미 후진기어를 넣고 엑세레이더를 밟으면서 후방을 살피는 운전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단지 2~3초밖에 걸리지 않는 후방 확인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빨리빨리’ 문화를 보면서 대부분의 산업사고의 원인이 이렇게 서두르거나 급하게 행동하는 데에 있으며 작업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빨리빨리 문화’ ‘빨리빨리 해결’ 금물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안전을 위해 접근할 수 있을까?
이전에 모 일간지에서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1970년대부터 급속하게 발전해온 한국경제의 부산물 이란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아주 여유 있는 삶을 살았지만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스피드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덧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은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인의 근면성을 나타내며 한국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사회는 동작이 빠른 거나 서두르는 사람을 더욱 대우해 주고 그렇게 되도록 훈련시키는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한국 남자들이면 대부분 다녀오는 군대에서 동작이 느리거나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고문관 취급을 받으며 군생활을 아주 어렵게 했을 것이다.

요즘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가장 먼저 배운 한국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빨리빨리 해”라고 말할 정도이니 이미 ‘빨리빨리’는 한국인에게 깊이 뿌리내린 바꾸기 어려운 문화 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빨리빨리’ 문화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미 우리 몸속에 그 문화가 배어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위해서 개선해야 한다면, 이것은 급하게 서둘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빨리빨리’로 발생된 문제이지만 ‘빨리빨리’해서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안전문화 발전 위한 4가지 제안
산업체에서 안전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안전문화 발전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안전제도나 정책을 만들 때 선진국의 좋은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강력한 규제 위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것 보다는 한국 국민의 정서나 행동습관을 고려하여 제도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실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더 효율적이 될 수도 있다. 빨리 해야 하고 서두르는데 익숙한 한국인의 정서에 너무 절차를 중시하거나 복잡한 제도는 효과를 얻기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사업주나 근로자들이 지켜야 되는 안전기준이나 수칙은 선언적인 내용보다 실제 행동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항까지 자세히 알려 주어야 한다. 많은 안전기준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실제 적용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대부분은 시간을 투자하여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셋째, 안전에 대한 광고나 홍보 활동 시에도 반드시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요보다 한국인의 서두르는 행동습관을 스스로 인식하고 억제할 수 있도록 감성에 호소하는 콘텐츠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업장의 대부분 안전교육이 안전법규, 기준, 수칙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고 있지만 작업자의 행동이나 동작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자신의 작업행동이나 동작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이나 훈련이 이루어지면 개인의 불안전행동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월드컵 축구경기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고 많은 지구상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보다 느긋한 성격을 가진 남미 선수들이 문전에서 차분히 쉽게 골을 넣은 장면을 보며 한때 우리나라 축구가 문전에서 허둥지둥하고 침착하지 못하여 골을 넣지 못한다며 비판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서두르고, 빨리 하기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점차 버려야 할 병폐가 될지도 모른다. 과거와는 다르게 기계나 장비가 빨리 일을 해주고 좋은 교통수단이 사람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즘의 시대에서 인간은 보다 여유를 찾음으로써 안전한 삶을 영위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