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안보 및 국가핵심기반에 대한 위기 등 각종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정부의 대응을 규정한 ‘국가위기관리매뉴얼’이 손질된다. 행정안전부는 천안함 침몰사건, 신종인플루엔자, 구제역 발생 등을 계기로 재난 및 국가핵심기반분야 위기유형 매뉴얼에 대해 주관부처별로 민관 합동 일제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국가위기관리매뉴얼의 점검·개선이 추진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해군 천암함 침몰사건이다. 천안함 침몰 뒤 군 당국과 국방부가 보여준 위기대응관리능력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다. 국방부에서 위기관리매뉴얼이 있었지만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위기대응관리능력이 수준이하라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매뉴얼에 포함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자 이랬다 저랬다 우왕좌왕하며 허둥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21개 국가위기관리매뉴얼을 관리하면서, 이번에 20개 매뉴얼의 점검·개선을 맡은 행안부 재난안전실 쪽은 “천안함 사태당시 어뢰 공격을 당했을 때 대응절차는 매뉴얼에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매뉴얼에 없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언론 및 국민 대상 홍보에서부터 사고 소식을 유가족에게 전하는 과정, 순직 장병을 위한 빈소마련 및 조문·장례 절차 등이 매뉴얼에 빠져있어 혼란을 일으켰다”는 게 재난안전실의 설명이다.

행안부 20개 매뉴얼 손질에 전문가 참여
지난 참여정부 때 옛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만든 국가위기관리(표준)매뉴얼은 모두 33개다. 이 중 행안부에서는 재난 12개, 국가핵심기반 8개, 안보 1개 등 21개 위기유형의 매뉴얼을 관리하고 있다<표>참조. 나머지 전통적 안보 분야와 관련된 매뉴얼 12개는 청와대에서 관리중이다.

이번 일제점검에서는 33개 국가위기관리매뉴얼 가운데 전통적 안보 분야 12개와 행안부가 관리하는 소요폭동 등 13개 매뉴얼은 청와대가 주관하고, 나머지 재난 및 국가핵심기반 20개는 행안부에서 맡기로 했다. 일제점검의 배경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천안함 침몰사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행안부는 국가위기관리매뉴얼 일제점검의 추진배경으로 5월25일 국무회의의‘천안함사태 관련 비상대비태세 강화’, 6월8일 국무총리의 ‘국가위기관리 및 대응매뉴얼 전면 개선 지시’를 꼽았다. 특히 6월8일 국무회의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무총리실과 행안부는 재난과 국가위기 상황에 대비한 각 기관의 매뉴얼 관리 실태를 일제점검하고 총체적으로 보완·개선할 것”을 지시한 게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행안부가 추진하는 20개 재난 및 국가핵심기반에 대한 위기관리매뉴얼 일제점검에서 눈에 띄는 점은 외부 민간전문가가 대거 참가한 민관합동 점검이라는 것이다. 재난안전실은 이번 일제점검은 “위기유형별 매뉴얼 점검은 주관부처 국장급을 반장으로 하고 행안부, 주관부처 및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위원, 외부전문가 등 민간 전문가를 포함해 모두 5명으로 구성하는 민ㆍ관 합동점검반을 편성해 주관부처 모의훈련을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모의훈련 거쳐 재난상황에 맞게 개선·보완
행안부는 이번 일제점검은 표준·실무·현장조치 행동매뉴얼 관리기관이 참여하는 토의형 모의훈련을 통해 현행 매뉴얼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 발전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매뉴얼 운영 부처별 모의훈련을 거쳐 재난 위기경보 단계(관심ㆍ주의ㆍ경계ㆍ심각)별 표준·실무·현장조치 행동매뉴얼 간 작동상황, 연계성 및 현실 적용성 등을 점검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민ㆍ관 합동점검반이 참석하는 모의훈련은 현행 매뉴얼에 수록된 재난의 위기경보 단계별 기관의 임무ㆍ역할을 위기대응 시나리오(국가핵심기반)에 따라 매뉴얼 운영상 문제점 및 개선사항을 사전에 도출해 각 참석자에게 미리 배포한 뒤 점검당일 토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이번 점검은 표준·실무·현장조치 행동매뉴얼 작성·운영기관이 참여하는 토의형 모의훈련으로 진행하고, 재난의 위기경보 단계별로 기관의 임무·역할을 위기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작동상황, 연계성 및 현실 적용성 등을 점검해 재난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현실에 맞게 개선·보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행안부는 토의형 모의훈련 시 참고할 현행 매뉴얼 운영상 나타난 문제점과 보완·개선 사항을 제시했다. △사회·경제적 핵심보전가치에 대한 고려, 위기경보 단계별 판단기준 및 기관별 임무·역할 등 현실적으로 운영 △각종 재난 시 자원봉사자와 재난유형별 전문가 등을 민간 네트워크 구축 활용방안과 위기유형별 매뉴얼에 국민행동요령 반영, 유사시 비상대비 인적·물적자원 현황 및 활용 연계방안 게재가 그것이다.

국가위기관리매뉴얼 일제점검을 담당한 행안부 재난대책과 안병윤 과장과 유재명 사무관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일제점검은 현행 매뉴얼이 과연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인지 검증하는 것이다.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 있는지,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지침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점검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 마음까지 챙길 수 있는 매뉴얼이 돼야 한다”는 표현도 따랐다.

부처별 개선·보완 후 9월중 결과 보고
행안부의 일제점검 일정에 따르면, 7월 중에는 모의훈련 및 점검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8월 중에 부처별로 매뉴얼에 즉각 반영키로 했다. 그리고 9월 중에 그 결과를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중앙안전관리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중앙안전관리위원회 보고는 9월14일로 잡혀있지만,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게 행안부 쪽 설명이다.

이 같은 일정에 대해 민ㆍ관 합동점검반에 포함된 일부 민간전문가들 사이에선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단 두 달 안에 모의훈련과 일제점검을 거쳐 이를 반영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 점검 및 개선·보완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제점검에 앞서 7월2일 정부중앙청사 별관3층 국제회의실에서 행안부가 마련한 ‘국가위기관리 매뉴얼 모의훈련 점검반 사전 교육’ 참석자 가운데 일부 민간 전문가들은 행안부 담당자들에게 이 같은 지적을 했다.

이에 대해 정용준 행안부 재난안전관리관(국장)은 “이번 일제점검은 절대로 부처별 매뉴얼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라 개선이 목표”라며 “국가위기관리매뉴얼을 만든 뒤 처음으로 현실과 맞는지 검증하는 기회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이어서 “이번 일제점검을 통해 재난관리 담당자들이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매뉴얼을 다시 한 번 꼼꼼히 검토해 봄으로써 재난(위기)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분위기 조성을 해보자는 뜻도 포함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