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및 안전관리 주부무처는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이다. 최근 들어 행안부와 소방방재청은 ‘친서민’을 부쩍 강조하는 모양새다. 대통령과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 기조에 맞춰 당연한 움직임으로 보이지만 재원마련이나 철저한 실태파악 및 조사 분석 등 알맹이 없이 의욕만 앞설 경우 구호뿐이라거나 생색내기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전현직 재난안전관리 담당 공무원 등에게 재난안전 정책 사례와 현 실정, 개선방안 등을 들어봤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화재를 비롯한 안전사고는 주로 저소득 서민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서민층의 안전을 위해 소방방재청 등에서 노력중지만, 재원의 한계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진항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이 행안부 재난안전실장으로 일하던 올해 5월3일 행안부가 개최한 ‘안전문화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김진항 연구위원은 당시 재난과 안전사고는 대부분 저소득 계층의 문제여서 이를 빨리 해결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면서 재난안전은 한정된 자원(예산)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배분하는가라는 ‘가치배분’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08년 2월부터 초대 재난안전실장으로 일하다가 올 7월말 행안부에서 지방행정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진항 연구위원을 찾아 당시 발언에 대해 물어봤다.

한정된 예산 어떻게 지원할까?

	김진항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석좌연구위원

김진항 연구위원은 당시 발언에 대해 재난 및 안전사고가 주로 서민층의 문제라는 것은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말했다. 부유층이나 중산층과 달리 서민층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처럼 배가 고픈 처지여서 안전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또 서민층의 안전을 위한 소방방재청의 노력이란, 소방방재청의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 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했다.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은 소방방재청 시설안전과에서 2007년부터 추진해온 것으로, 서민층에 대한 긴급 무료 안전점검 서비스를 가리킨다.

이 사업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8월초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전국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서민층 5만 2천여 가구에 대해 전기, 가스 등 무료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누전차단기, 콘센트, 가스밸브 등 노후시설을 교체했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만 국비 12억9000만원을 지원해 서민층 가구를 대상으로 무료 안전점검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전국 시도 및 시군구에서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관련단체, 자원봉사자 등 안전복지컨설팅단을 구성해 적극적인 조기집행 노력과 협조로 올해 상반기 국비 13억 중 12억 9천만원을 집행하여 집행률이 99.9%에 이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조기집행성과는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안전에 소홀한 서민층에 안전복지서비스를 제공하여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으로 기초적인 안전보장에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서민층 무료안전점검 ‘뒷전’ 취급
소방방재청 시설안전과 관계자에 따르면,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은 2007년부터 국비와 지방비를 50%씩 투입하는 국고보조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까지 4년 동안 118억원을 투입해 26만여 가구에 대한 무료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추경예산으로 국비 13억을 추가 확보, 52억을 지원해 10만3000여 가구를 정비함으로써 서민생활안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소방방재청은 자랑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앞날이 불투명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확보가 녹록치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설안전과 쪽에선 “자치단체, 기업, 자원봉사자 등과 연계해 2012년까지 5개년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 쪽에서 관련 예산을 편성하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및 국토해양부의 서민층 지원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에 예산을 배정하길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 시설안전과 관계자는 “복지부와 국토부가 추진하는 노후가구 집수리 사업(저소득층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과 겹친다는 이유를 들면서 기재부 쪽에서 예산을 주길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집수리 같은 사업은 가구당 예산이 많이 소요돼 지원 대상 가구가 적을 수밖에 없지만, 무료 안전점검은 불완전하더라도 다수 서민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소방방재청은 생활공감정책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을 내년부터는 서민층의 화재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화재경보기 설치 쪽에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소방서와 연계한 화재안전교육과 병행해 단독경보형감지기, 소화기 등 안전시설 설치 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란 게 소방방재청의 설명이다.

저비용 고효율 지원방안 필요
김진항 연구위원은 경제정책뿐 아니라 재난안전 분야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각종 재난과 안전사고 같은 문제가 생겨도 잃을 게 별로 없는 서민층(영세 저소득층)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란 자세여서 국가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재난 및 안전사고가 본인만의 문제일 수 있었지만 도시화된 사회에서는 본인뿐 아니라 불특정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좁은 지역에 밀집해 사는 서민층은 재난 및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꼬집었다.

김 연구위원은 서민층에 대한 재난안전 정책을 사회적 인프라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투자해 재난을 예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민층의 재난 예방을 위해 효과적인 저비용 고효율 정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이 필요성을 주장한 저비용 고효율 재난안전 정책의 한 예가 앞서 설명한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이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가구당 6만원 꼴로 가구당 최대 지원액이 600만원에 이르는 저소득층 주거환경개선 사업과 같은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면서 “사업대상 가구들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 만족도를 조사해보니 만족하다는 응답이 68%, 보통이다 이상은 94%에 이르렀다고 한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11월2일부터 12월3일까지 한 달간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에 대한 수혜자 만족도를 파악하고 개선사항을 찾아내기 위해 477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은 전국 시군구당 20여명씩 표본 추출했고 조사방법은 설문지를 통한 방문조사와 전화조사를 병행했다. 조사결과 설문참여자 4772명 가운데 매우 만족한다 23%(1115명), 만족한다 45%(2145명), 보통이다 26%(1237명), 약간 불만족스러운 편이다 4%(171명),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 2%(104명)으로 나타났다.

‘선공후사’ 마음가짐 일해야“
비록 ‘친서민’이란 수식이 붙지 않고 다수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행안부가 올해 추진한 재난취약 외딴마을 이주사업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행안부는 지난 3월31일 침수, 산사태, 낙석 등 재해를 거의 매년 반복적으로 겪어온 전국 15개 마을을 올해 우기 전까지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특별교부세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여름철 빈번한 태풍·집중호우로 인해 재해위험이 상존하는 외딴마을들을 통째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행안부가 올해 처음 추진한 외딴마을 이주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14일 호우피해 대처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찾았을 때 지시한 사항이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지구온난화로 기상예측이 어려운 만큼 외딴마을 피해 방지를 위해 안전한 곳에 모여 살도록 하는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지난해 실시한 지방자치단체 수요조사와 현지 점검을 통한 주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3월30일 이주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강원 8가구(16명), 전남 9가구(26명), 경남 14가구(28명) 등 3개 시도 31가구 70명의 주민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는 데 특교세를 지원했다.

매년 피해가 반복되는 마을 전체를 안전지대로 이주시킨 것은 큰돈을 들여서 재해예방사업을 벌이기보다 효과적인 정책으로 보인다. 매년 재난 걱정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 마음 편히 살겠다는 주민 의사에 따라 그들을 이주시킨 것은 항구적인 저비용 고효율 안전대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재해위험 외딴마을 주민들이 이주한 지역에 대해선 지역여건에 따라 항구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등 재난에 의한 피해 재발방지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김진항 연구위원은 재난안전 분야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발생한 대구 노곡동 침수피해 사례를 들면서 ‘멸사봉공’은 아니더라도 ‘선공후사’의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친서민’에 어울리는 정책을 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해위험지구 관리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배수펌프장 관리 공무원들처럼 맡겨진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친서민’을 강조해도 소용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