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추락사고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게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항공기가 조류와 충돌하는 사고를 이른다. 조류가 항공기 조종석 유리창에 부딪치거나 제트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버드 스트라이크와 관련해 공항과 주변지역 토지이용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다.
< 재난포커스 - 김용삼 기자 >
항공기 안전을 위해 민간공항과 공군기지에서는 조류 퇴치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새와 충돌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도시경관계획 Landscape and Urban Planning>에 실린 논문 ‘항공기와 야생 동물의 충돌’(Wildlife collisions with aircraft: A missing component of land-use planning for airports)에 따르면, 야생동물-항공기 충돌은 세계 항공 산업에 안전문제와 경제적 위협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1998년 이후 200대가 넘는 민간·군용항공기가 야생동물과 충돌해 큰 피해를 입었고 219명 이상이 숨졌다. 세계 민간 항공 산업의 연간 피해액은 무려 1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미 연방항공국(FAA)은 야생동물-항공기 충돌의 97.5％가 조류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심각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공항주변에서 충돌사고 다발
1960년대 들어 항공기 덩치가 커지고 엔진이 피스톤에서 터빈으로 바뀌면서 버드 스트라이크 가능성도 커졌다. 몇몇 조류의 개체 수 증가도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런데 버드 스트라이크의 95％는 항공기가 공항에서 18.5㎞ 떨어져 있을 때 이착륙을 시도하는 고도인 지상 1067m 이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항공기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충돌사고의 66％는 지상 ≤152m에서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때문에 ‘항공기와 야생 동물의 충돌’의 주저자인 미국 국립야생동물연구센터(NWRC) 브래들리 블랙웰(Bradley F. Blackwell) 박사는 주로 FAA 자료를 중심으로 야생동물-항공기 충돌과 공항 및 주변지역 토지이용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논문을 썼다고 밝혔다.
항공 운송의 안전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ICAO 지침서는 공항 및 공항주변 13㎞ 이내에서 야생동물에 의한 재난을 부르는 토지이용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물고기 가공공장, 농업, 가축사육지, 쓰레기 투기지 및 매립장, 주차장, 야생동물 보호소, 인공 및 자연호수, 골프장, 도살장 등이 그것이다.
미국 규정인 CFR 139의 야생동물위험관리(Wildlife Hazard Management)에 의하면, FAA가 인가한 공항 당국은 여러 사건 중 하나라도 발생하면 즉시 평가를 통해 야생동물 재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사건은 △야생동물 무리(특히 새떼)에 의한 충돌 △비행기의 심한 손상 △엔진의 야생동물 흡입 △비행항로에 야생동물 무리 출현에 따른 충돌 위험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항공기 안전에 치명적인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한 조처다.
항공재난을 부르는 토지이용
ICAO에 따르면, 빗물유출관리는 공항의 활주로와 유도로, 격납고 앞 포장광장의 안전운영에 필요할 뿐 아니라 자연수계시스템에 대한 오염물질 유입을 차단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공항의 빗물유출관리시설인 유수지는 새들을 유인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공항에 대한 FAA AC 150/5200-33B는 유수지는 빗물유출량이 최장 48시간 머물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블랙웰 등은 미국 워싱턴주의 공항용 우수관리 연못 30개를 2008년 한 해 동안 모니터한 결과 재검토가 필요함을 알아냈다. 새가 연못을 찾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원형이나 선형설계로 연못 둘레를 줄이고 유수지 시설이 다른 수자원에서 최대한 먼 곳에 건설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항의 토지피복(land cover)도 문제다. 공항의 주된 토지피복은 유럽 찌르레기, 캐나다 거위, 갈매기 등을 유인하기 쉬운 잔디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잔디는 보기엔 좋지만 관리비용이 비싸다. 따라서 공항구역의 잔디를 부분적으로 소득이 있는 식량 작물, 바이오연료용 작물 등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특히 재정 사정이 열악한 작은 공항에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ICAO와 FAA는 공항구역 내 농업을 추천하지 않는다. 새들을 유인하는 가능성이 잔디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FAA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미국의 작은 공항들은 공항 내 넓은 땅을 농업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2008년 미국 인디애나주 10개 소형 공항에 대한 조사 결과 공항구역의 약 20％가 옥수수, 콩 등 농작물로 덮여있었으며 어떤 공항에서는 활주로 20m 이내에도 밭이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새들은 인위적 교란행위가 잦거나 농약을 사용하는 밭보다는 둥지를 지을 곳과 먹이가 풍부한 숲이나 풀로 뒤덮인 수로 등을 좋아한다. 하지만 수확 뒤 밭갈이 한 밭에는 무척추동물과 남은 씨앗을 먹으려고 새들이 많이 찾는다.
안전을 위해 일반인 출입이 엄격한 공항은 도심과 달리 인간의 교란행위가 덜한 편이어서 공항과 주변의 숲, 초지, 수계 등에는 먹이와 번식지가 많다. 맹금류는 공항과 주변에서 작은 포유동물과 물고기, 작은 새들을 사냥한다. 공항의 자연보존지대는 야생동물을 유인하므로 항공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공항계획자는 생물 보존과 야생동물 관리를 위한 완충지대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완충지대는 버드 스트라이크 재난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공항과 주변지역의 지속적인 개발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평가
공항과 그 주변지역의 야생동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평가가 무엇보다 먼저 필요하다. 이 위험평가는 토지이용자료, 야생동물의 상대적 개체 수, 충돌통계자료, 항공기 유형과 운항횟수 등을 포함해야 한다. 이 자료는 FAA의 국립야생동물충돌데이터베이스(NWSD)에 저장된다.
1995년 FAA는 미국 농무부 산하 야생동물관리국(WS)의 동의 아래 버드 스트라이크의 성격과 규모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1990년 이후 FAA가 접수한 모든 충돌사건의 편집, 충돌자료의 NWSD 입력, 기존자료의 보충 등을 포함했다.
그러나 NWSD에는 공항주변에 대한 현재의 토지이용자료가 없다. 공항주변 토지이용자료와 토지이용에 따른 야생동물 서식자료가 없으면 현재나 앞으로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평가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료가 부족할 때 지리학상 유사한 다른 위치에 대한 야생동물 충돌 통계치는 물론 유사한 서식지에서 야생동물의 계절적 출현을 반영하는 도수분포가 위험평가에 활용될 수 있다.
블랙웰 박사 등은 논문의 결론으로 “공항과 주변지역 토지이용의 종류와 개발 정도는 야생동물의 개체 수와 항공안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공항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토지이용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연구란 △공항과 주변지역의 빗물관리 △야생동물(특히 조류)의 농경지와 잔디의 이용 △완충지대 사용을 포함한 여러 가지 토지이용에 따른 야생동물 개체수의 수량화 및 공항과 주변지역의 지속적 개발 △야생동물 충돌 위험평가에 필요한 새로운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등이다.
세계 주요 공항의 조류퇴치 노력
이 논문을 정리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대석 전문연구위원은 ‘전문가 제언’을 통해 야생동물-항공기 충돌사고 사례와 국내외 주요 공항들의 조류퇴치 노력에 대해 소개했다. 한대석 전문연구위원의 전문가 제언에 따르면, 시속 370㎞으로 이착륙하는 항공기에 채 1㎏이 못 되는(0.9㎏) 새 한 마리가 충돌할 경우, 항공기가 받는 순간 충격은 4.8톤이나 된다. 항공기에 손상을 주기에 충분한 위력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 이후 9만8000건이 넘는 야생동물-항공기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기간 콜로라도주 덴버 국제공항이 2416건의 충돌사고가 발생해 미국 공항 중 1위에 올랐다. 프랑스 항공 당국은 1912~2008년 프랑스에서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락한 민항기는 90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최악의 버드 스트라이크는 196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동부 제너럴 에드워드 로렌스 로간 국제공항(로간 국제공항)에서 발생했다. 이스턴 항공(Eastern Airlines) 소속 여객기가 이륙도중 찌르레기 떼와 충돌해 추락한 것이다. 이 사고로 6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공항 대부분은 버드 스트라이크를 방지하기 위해 조류가 공항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공항의 조류퇴치에는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미국 뉴욕의 존 F 케네디(JFK) 국제공항과 영국 맨체스터 국제공항에서는 새들을 쫒기 위해 매를 활용하고 있다. 또 뉴질랜드에서는 갈매기를 유인하는 벌레를 없애려고 전기가 흐르는 매트(electrified mat)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선 조류 유전자정보체계 구축
국내에서도 버드 스트라이크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두 항공사의 버드 스트라이크는 2005년 59건에서 2007년 74건으로 늘어났다. 한국항공공사가 관리하는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2007년 버드 스트라이크가 가장 빈번한 공항은 17건이 발생한 김포공항이었다.
영종도에 자리한 인천국제공항도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이 상존한다. 2008년 10월 인천국제공항의 활주로 주변에서 관측된 철새가 무려 1만3120여 마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에선 조류퇴치 요원 30명이 24시간 2교대로 항공기 이착륙 구역을 관리한다.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고 항공안전을 지키기 위해 유전자연구까지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7월29일 국토해양부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조류 유전자 정보 체계를 이용할 계획”이며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와 국립생물자원관 사이에 조류의 유전자정보체계 구축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고 밝혔다. 버드 스트라이크를 방지하는 데 국립생물자원관이 보유한 조류 유전자정보 체계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조류 유전자정보 체계는 버드 스트라이크 발생 시 채취 가능한 혈흔, 깃털 등으로 DNA를 분석해 조류의 종류 등을 판별하는 것으로 “각종 조류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충돌 조류의 종류와 크기 등을 과학적으로 식별하는 시스템”이다. “미국 등에선 이미 조류 유전자 정보 분석 결과를 조류충돌방지대책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는 게 국토의 설명이다.
한편 국토부 항공정책실은 이날 “우리나라의 항공기-조류충돌 건수는 1만대 운항 횟수 당 1.22건으로 미국(2.47건) 캐나다(4.17건), 프랑스(1.85건)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