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전국을 휘감으며 기세를 살벌하게 떨치고 있다. 특히 바람을 타고 번지는 이 전염병 앞에서 농축산민들의 소·돼지가 무더기로 살처분 되고 있다.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혹한도 대규모 백신 접종도 구제역을 막지 못하고 있다. 1997년 대만, 2001년 영국도 구제역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때의 피해액이 대만은 41조원, 영국이 약 60억파운드(약 10조5000억원)로 나라 전체를 흔들만한 금액이었다.

 이에 구제역이 역사에 처음 알려진 것은 중세인 16세기였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의 한 수도승이 1514년 소가 침을 흘리고 수포가 생겼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증상은 전형적인 구제역 증상이다. 한편 구제역 바이러스가 과학자에 의해 확인된 것은 1898년이다. 이후 인류가 1세기가 넘는 퇴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은 오늘날 6억명에 이르는 전 세계 축산업자들을 두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염성 높은 우제류가축의 급성전염병으로, 치사율이 5~55%에 달한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고 조직배양 백신을 이용한 예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발굽이 2개인 소·돼지 등의 입·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긴 뒤 죽는다. 소의 경우 잠복기는 3∼8일이며, 초기에 고열(40∼41℃)이 있고, 사료를 잘 먹지 못한 채 거품 섞인 침을 흘린다. 잘 일어서지 못하고 통증을 수반하는 급성구내염과 제관·지간에 수포가 생기면서 앓다가 죽는다.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만일 이 병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검역을 철저히 해야 하며, 감염된 소와 접촉된 모든 소를 소각하거나 매장해야 한다. 돼지는 소에 비해 입의 병변은 가볍고 다리의 병변은 무겁다. 더욱이 새끼돼지는 급사하는 경우가 높다. 면양에서는 증상은 가볍고, 다리를 저는 것이 발견된다. 이런 가운데 구제역 바이러스는 지름이 23~25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동물 바이러스 중 가장 작은 바이러스로 알려졌다. 또한 유전 정보를 지닌 RNA 주위를 단백질이 둘러싸고 있는 20면체이다.

더욱이 구제역 바이러스 자신의 유전 정보를 지닌 RNA 주위를 단백질 띠로 싸고 숙주 시너지를 갖고 있다. 이에 소.돼지.염소.양 등 숙주가 다양하고 이들 동물이 바이러스를 배양, 증폭·전파하는 데 있어서 마치 역할을 분담한 듯 구제역 바이러스의 감염성을 크게 증폭시킨다. 예컨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는 하루 4억개의 바이러스 입자를 호흡을 통해 뱉어낼 만큼 구제역 바이러스 감염성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소도 공기를 통해 감염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양의 경우는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구제역을 전파시킨다.

이처럼 숙주들이 바이러스 전파 과정에서 서로 시너지를 이루면서 구제역은 빨리 멀리 퍼지며 가축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염력도 바이러스계 최강으로 꼽힌다. 이에 소, 돼지들의 호흡을 통해 흡입될 경우 단 10개의 바이러스만으로도 소나 돼지를 감염시킬 수 있다. 그보다 강한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한 개로도 돼지를 죽음으로 모는 돼지콜레라 바이러스밖에 없다. 더구나 구제역 바이러스는 바람을 타고 한 번에 250㎞까지 퍼져 나간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어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독감인플루엔자처럼 변종이 쉽게 출현하는 RNA 바이러스여서 백신을 통한 완전 퇴치에도 한계가 있다. 크게 나누면 7종, 세밀하게 구분하면 70~80종의 변종이 존재한다. 이에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O형 바이러스에 면역이 된 소라고 해도 A형 바이러스에는 대책이 없다. 또 구제역 바이러스는 사람이 활동하기 어려운 겨울철에 특히 기승을 부려 방역을 어렵게 한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온도는 4도 안팎의 저온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구제역이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영국에서 사람의 구제역 감염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지만 학계는 감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구제역 바이러스도 약점이 있다. pH 6 이하의 산성 또는 pH 9.5 이상의 알칼리성에서 급격히 파괴되는 것이 확인됐다. 구제역 소독제 중에 산성 또는 알칼리성 제제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편 구제역 사태가 25일로 58일째를 맞으며 오랫동안 번지고 있다.

특히 지난 1월20일 구제역은 한우 산지인 강원도 횡성 둔내면에 있는 축산기술연구센터까지 번졌다. 또한 충남 예산, 경북 포항에서도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날까지 살처분 된 가축은 총 228만 1112마리이며 살처분 보상금과 방역비 등은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가축별로는 소 13만4735마리, 돼지 186만4436마리, 염소 3451마리, 사슴 1826마리 등이 살처분 됐다.

이런 가운데 농림수산식품부는 오는 1월 말까지 1200만 마리 분량의 구제역 백신을 확보해 설 이전에는 전국의 모든 소와 돼지를 대상으로 1차 백신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별로 편차를 보이고 있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백신접종을 꺼리는 농가의 반발로 상대적으로 접종률이 낮은 부산(43%), 대구(36%), 광주(39%), 울산(65%), 경북(61%) 지역을 대상으로 설득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농식품부가 뒤늦게 발을 굴리는 것은 구제역처럼 전파력이 강한 가축전염병의 방역은 분초를 다투는 속도전이 필요한데, 농민 반발을 이유로 백신 접종 결정 등 방역 대책의 주요 고비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농식품부는 작년 11월 초 만성적인 구제역 발생 국가인 베트남으로 단체 여행을 다녀온 안동 지역의 한 친목모임에 속한 농장주 3명을 바이러스 유입 경로로 추정 할 뿐이다. 더욱이 경기도 파주의 가축분뇨시설 차량이 첫 발생 시기를 전후해 안동을 두 차례 드나들었다는 것도 보름쯤 지난 뒤에야 확인했다. 결국 경기도 지역의 방역 시기를 놓쳐 버린 셈이다. 여기에 구제역이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번진 상황에서 경계구역(발생지역으로 부터 10km 이내)과 관리지역(발생지역으로 부터 10~20km)을 과거 기준대로 좁게 설정하는 실책도 범했다.

<재난포커스 - 김정환기자(knews24@di-f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