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 의한 가축사체가 여기저기 묻히며 매몰지에 대한 부실관리가 도마위에 오른 가운데 소, 돼지 매몰지에서 침출물의 부패가 심각하게 올라오고 있어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에 경기도 여주의 A농장 매몰지에선 돼지 사체의 일부 부위와 핏물 등 침출물이 매몰지 위로 노출돼 있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특히 돼지 사체는 물론이고 누런 침출물이 흘러나와 버터층처럼 굳은 채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어 심각하게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 또한 경기도 이천시에서도 B농장의 돼지 매몰지에서 돼지 사체가 파묻은 흙을 밀고 나오는 사례가 확인되는 등 기온이 상승하면서 부실한 매몰지 관리실태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재난포커스 - 김정환기자(knews24@di-focus.com)>

살처분된 가축 주먹구구식으로 매몰해

구제역 사태로 살처분된 가축 사체가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매몰된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환경오염 불안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구제역에 걸려 살처분된 소와 돼지에게서 나오는 침출수가 지하수와 하천,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소·돼지·사슴·염소 등 우제류 4개 동물이 320만마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매몰지역이 4100곳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지방자치단체는 ‘구제역 긴급행동지침’ 등 정부 지침에 따라 신속하게 매몰 처리를 해야 한다. 먼저 지하수층이나 하천 주변을 피해 매몰지를 선정해 5m 깊이로 구덩이를 판다. 가축 사체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새지 않도록 차수막(비닐)을 덮고 그 위에 1m 두께로 흙을 깐 뒤 2m 두께로 동물의 사체를 쌓아야 한다. 여기에 추가적인 흙 덮기와 비닐 감싸기를 마쳐야 매몰 작업이 마무리 된다.

하지만 가축의 사체가 워낙 많고 방역통제선 밖으로 이동할 수 없어, 매몰 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집중호우 때 붕괴 우려가 있는 경사진 곳이나 침출수 오염 우려가 있는 하천, 지하수 근처에도 매몰을 했다. 이와 함께 작은 면적에 한꺼번에 많은 가축을 묻다 보니 흙을 규정대로 덮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 또한 대부분 생매장된 돼지는 저항하면서 차수막을 찢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사체에서 나온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들 위험성이 커진다.

침출수에는 질소 오염 물질, 병원성 미생물, 항생제, 식중독균 등이 상존할 가능성이 있다. 사체에 남은 구제역 바이러스도 다시 전염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구제역이 발병한 경기 포천 지역의 매몰지 주변 지하수 47곳 중 14곳(29.8%)에서 질산성 질소, 일반세균이 수질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 6156만ℓ생수병 1억2000만개

이에 정부는 부실 매몰지를 조사해 보강공사를 벌이고 지하수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에 충분하며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에 매몰지가 침출수 영향 없이 안정화되려면 적어도 20년이 걸리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전국 구제역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가 6000만를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이는 생수병(500㎖) 1억2000만개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전례없는 침출수 발생량 때문에 이를 회수해 폐기 처리하는 데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영국과 미국 정부 자료를 통해 산정한 결과, 지난 2월 12일까지 전국 구제역 매몰지에서 발생 가능한 침출수 예상량이 6156만ℓ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01년 영국 통계청은 소 한 마리에서 두 달 동안 나오는 침출수를 약 170ℓ로 추정했고, 미국 농무부 농식물검역청도 소 160ℓ, 돼지 12ℓ의 침출수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 12일까지 살처분된 소 15만마리, 돼지 313만마리를 토대로 침출수 발생량을 산정하면, 소 매몰지 2400만ℓ, 돼지 매몰지 3756만ℓ 등 6156만ℓ의 침출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물 사체의 폐기물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는 패혈증을 일으키는 탄저균과 식중독균 등 각종 병원균이 섞여 있어, 제대로 회수·폐기하지 않으면 주변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

침출수가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전국적으로 퍼진 조류 인플루엔자(AI)는 조류의 특성상 침출수 발생량이 적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구제역 매몰지에서 침출수를 주기적으로 회수해 폐기하도록 돼 있다. ‘구제역 긴급행동 지침’을 보면, 매몰지 바닥을 2% 경사로 파서 침출수를 한곳에 모으고 이를 침출수 배출 유공관을 통해 주기적으로 회수해야 한다. 지표면에 스며들며 나오는 침출수는 배수로를 거쳐 저류조에 모은 뒤 회수한다.

하지만 경기도가 지난 5~9일 팔당상수원보호구역 주변 매몰지 1844곳을 조사한 결과, 1033곳(56%)의 배수로·저류조와 829곳(45%)의 침출수 배출관이 ‘불량’으로 나타나 보강 공사가 필요하다. 침출수 회수장치를 보완하더라도, 이와 관련한 처리·폐기 매뉴얼이 없어 지자체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구제역 행동지침은 ‘침출수를 수시로 채집해 소각(증발) 또는 폐수 처리하라’는 원칙만 규정하고 있을 뿐, 침출수 회수 및 처리 방법, 운반 때 오염 방지대책 등은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침출수는 구제역 바이러스와 병원균 함유 가능성 때문에 하수처리할 수도 없다.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환경 오염 나타날 수 있어

이번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환경 오염이 될 수 있다. 특히 전례 없는 환경 재앙이 일어날 가눙성이 크다. 이는 지금까지 매몰지가 산정됐고 이런 좁은 지역에 많은 가축을 일시적으로 매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실한 매몰지는 큰비가 오거나 집중호우가 내리면 매몰지 자체가 밀리거나 쓸려나가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가축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침출수 발생은 불가피하다. 이런 우려가 있는 곳에는 우선 상수도 시설을 설치해 지하수를 음용하지 않도록 하는 등 응급 대처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곳이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 문제점이 또 있다. 매몰된 가축의 대부분이 돼지였다는 점이 그런 이유다. 돼지는 워낙 생명력이 강해 소와는 달리 몇 번이고 안락사 주사를 놔도 잘 죽지 않고 꽤 긴 시간을 버틴다. 그래서 생명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광적인 힘으로 (구덩이에 깔린) 비닐을 찢어 버릴 수 있다. 결국 침출수의 오염을 더 일으킬 수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피해액은 앞으로 천문학적 규모로 급증할 전망이다. 정부는 현재까지 살처분 보상과 백신비 등으로 3조원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2차 환경재앙 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오염 2차 재앙 외, 땅값 폭락 3차 재앙까지 예컨대 1997년 대만의 경우 41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식발표했으며, 2001년 600만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한 영국도 피해액은 11조원이라고 발표했다. 대만보다 살처분 규모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피해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영국은 생매장 대신 소각처리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만은 살아있는 돼지들을 무더기 생매장했다가 침출수 오염 등 2차 환경재앙이 발생, 매립지를 다시 파 콘크리트 옹벽을 만들어 재매장하고 시골 마을까지 상수도를 설치해주는 과정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게 됐다. 우리나라 역시 영국이 아닌 대만 방식을 택한 까닭에 처음부터 천문학적 재정투입이 예고된 상태였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환경재앙이라는 2차 비용 외에, 땅값 폭락이라는 ‘3차 재앙’까지 예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이 가축의 공동묘지가 됐다는 표현까지 나돌 정도로 이미 전국 4천여곳에서 대규모 매립이 단행됐다. 그 결과 벌써부터 일부 매립지 일대의 땅값은 급락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해빙기를 맞아 환경재앙이 현실화할 경우 이같은 현상은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