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이 연이어 발생해 방사성 물질 유출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국내 원전 내진설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맞춰 환경재단과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3월 17일 프레스센터에서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과연 안전한가’라는 주제로 관련 전문가와 함께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재난포커스 - 이정직기자(jjlee2di-focus.com)>

토론자 원전 안전문제 열띤 토론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원전 1~4호기의 연쇄 폭발 사고로 대규모 방사능 유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지난 3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국내 전문가들의 일본 대지진 관련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들은 사용 후 핵연료봉의 핵분열 가능성이 낮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방사선 유출에 따른 피해 정도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이날 사회는 이창형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맡았으며, 토론에는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 이석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기획부장, 양이원영 환경연합 에너지기후국 국장 등이 참여했다. 이날 자리에서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이석호 부장은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노심용융이 완료되고 바람이 한반도로 불어도, 일반인의 방사선 수치는 연간 허용치의 3분의 1인 0.3밀리시버트(mSV)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반도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5분 간격의 속보 형태로 원전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70개의 계측기가 전국에 고루 분포돼 감시하고 있다”며 “원전폭발 이후 정부, 국회 등에서 여러 번 보고가 있었지만 아직 국민들이 믿지 않는 게 문제”라고 아쉬워했다. 또 “다음 주 정부는 국내 원전 종합점검에 착수한다. 앞으로 가동 중, 혹은 건설 계획 중인 원전은 국제기구 중심으로 안전 기준이 강화될 것이며 자연재해 대비도 검토될 것”이라면서 “홍보에 주력해 국민을 이해시켜 정부를 신뢰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일본원전사고와 관련 안현호 지식경제부 1차관이 “우리나라는 원전 쓰나미가 온다고 해도 침수가 안 되는 구조로 돼 있다”고 말한 것과 교과부 관계자의 “국내 원전은 원자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대 지진을 고려했다”는 의견, 기상청의 “일본으로부터 부산물이 넘어오더라도 한반도에 날아올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일부 토론자들은 ‘안전하다’고 안심시키기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시스템환경학부 교수는 “한여름 계절풍과 국지적인 풍향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며 속단을 경계했다. 그는 “고준위 폐기물의 안전 보존 기간은 1만년이다. 온도도 방사능도 오래간다. 편서풍 때문에 지금 미국만 난리가 났지만, 남동풍이 부는 여름처럼 계절풍이 달라지는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한반도 피해가 전혀 없다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번 일본 지진은 자연재해와 인재

한편 오 교수는 역사지진도 무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서기 700년까지 진도 6.5~6.7의 지진이 9번 발생했으며, 1640년경 7.0의 지진이 있었다”면서 “1640년 이후 수 백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진 주기가 돌아올 수 있는 시기다. 원전 내진설계는 진도 6.5로 돼 있는데 이보다 더 거대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일본 지진은 자연재해와 인재가 더해진 경우로 발전지상주의 정책을 추구한 결과다.

원전을 최소화 시켜야 할 것”이라면서 “전력수요를 줄이고 공급자 위주가 아닌 수요자 위주로 시스템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 분야에서 신화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에서 이번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은 “인재(人災)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이은철 교수는 “이번 일본 지진에 기기 문제는 없었다. 전원만 빨리 복구했어도 좋았는데 일주일 늦게 복구하면서 문제가 커졌다”며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지만 인재가 겹쳐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이는 국내 원전이 지진설계에서도 일본에 버금갈 만큼 충분한 기술력을 갖춰 제작했기 때문에 운영진이 지진에 따른 2차 대응을 잘해나간다면 방사능 유출 위험이 없을 것이란 말로 풀이된다. 한편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 교수는 일본에 비해 열악한 국내 원자력 교육 실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장 교수는 “몇 년 전 한국 서점을 방문해 원자력 관련 도서를 검색해 본 결과 3권밖에 조회되지 않았다”며 “내 연구실에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 180여 권이나 되는 것과 비교하면 무척 열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항간에 떠돌고 있는 원자력 괴담이라든지 방사능 치료제로 ‘요오드’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며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와 이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은 국민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이번 일본 사건을 계기로 원자력 분야에 관심을 갖고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에너지정책 바꿔 20-30년 후 대비해야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에너지기후 국장은 “핵발전소에 의존해온 에너지 정책을 바꿔 20~30년 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원전에 대한 대안방향을 제시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80년대에 정책이 수정되면서 저가의 전기를 공급하고 건물 자체를 냉난방에너지가 많이 드는 건물로 건축하는 등 전력과 사회기반 시설이 핵발전소에 맞춰졌다”며 “수십년간 의존해온 핵발전소를 지금 당장 문 닫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점차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내진설계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양 국장은 “얼마 전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방사능 치료제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봤더니 안정화 요오드는 12만 5700여 명, 세슘 치료제인 프루시안블루는 130명분 정도였다”며 “안전만을 강조하는 정부가 사소한 대비책 마련은 부실해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재단 최열 대표도 “정부는 CO₂감축을 위해 원자력발전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원자력은 위험한 요소가 많다”면서 “추후 원자력발전을 전면 재검토하고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핵연료가 안전하지 않지만,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시켜 이용할 필요성을 제기됐다. 또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권력기구만 정보를 독점해 재난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현재 지식경제부(장관 최중경)에 따르면 현재 신고리 원전 2호기(부산 기장군), 신월성 원전 1, 2호기(경북 경주시 양북면), 신고리 원전 3, 4호기(울산 울주군), 신울진 원전 1, 2호기(경북 울진군)가 건설되고 있다. 또한 신고리 원전 5, 6호기(울산 울주군), 신울진 원전 3, 4호기(경북 울진군)가 건설 준비 단계에 있어 앞으로 원전 13기가 늘어난다. 강원 삼척시, 경북 영덕군, 울진군은 신규 원전 유치를 신청해 심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