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건물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부의 상징’이다. 경제적 가치로 인해 현재도 여기 저기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으며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미래의 자산가치라는 소비자들의 투자심리와 투기적 수요가 고층아파트의 공급을 증가시키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 | 이정직 기자

<재난포커스 - 이정직기자(jjlee@di-focus.com)>

일본 대지진과 고층아파트 공포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도쿄 한복판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게 했다. 일본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대지진 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정지돼 1층으로 대피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후쿠시마 제1원전과 대형 화력발전소가 대지진으로 파괴돼 전력공급 차질로 엘리베이터 운행이 평상시처럼 순조롭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쾌적한 마천루에 숨겨진 불안과 고충이 이번 대지진으로 불안의 상징으로 바뀐 내용이다. 일본 언론은 도쿄도(都) 주오구(中央區)의 초고층 아파트 55층에 살고 있는 한 일본 주부의 예를 들며 지진의 여파로 급히 테이블 아래로 숨어 있었지만 천정에 있는 샹드리에가 5분 넘게 30~40cm 흔들리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봤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특히 높이 약 180m의 55층에서 1층까지 10여초 만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아 이 주부가 순찰중인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고장이 아니라 점검중이다. 언제 복구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의 불안감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 주부는 결국 비상 계단을 통해 10분이나 걸려 1층으로 내려갔었다.

여진이 올 때마다 벽에 균열

일본 언론은 또 도쿄 주오구(中央區)의 40층 이상의 한 아파트는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방 전체가 돌아가는 것처럼 흔들리며 ‘끽- 끽-’하는 소리가 천장과 벽에서 들린다고 보도했다. 배 멀미 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은 고층 아파트의 고유한 특징이다. 과거 지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말과 함께 그럴 때마다 관리회사는 “구조에 문제가 없다. 흔들림을 이겨내기 위한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지진 때도 안전을 강조하는 안내문이 아파트 입구와 엘리베이터 안에 붙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이 아파트는 벽에 금이 가고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는 등 그 여파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이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아파트 붕괴사고 등 각종 재난에 크게 동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이 비단 일본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초고층아파트인 부산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는 고층 건물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신 골든스위트 화재 당시 4층 발화지점인 미화원 작업실에서 38층 펜트하우스를 거쳐 옥상까지 불이 번지는 데 불과 20분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관계자도 당시 “지금 시스템으로는 소방 고가사다리가 도달할 수 없는 15층 이상에 사는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나름대로 탈출법과 응급처치법을 스스로 숙지하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 현행 제도에서는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에 대한 별도의 정의조차도 없었으며, 이들 건축물의 안전관리를 각 개별법으로 관리하고 있어 개별법 틈새에 따른 안전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등 통합적 재난관리시스템 부재로 화재, 폭발, 테러 등 각종 재난발생 시 대규모 재난으로 확산될 우려가 매우 컸다.

여기에 건축물의 경우 재난관리가 각 시설물에 따라 별도의 관리주체별로 관리되는 경우가 많아 재난이 발생할 경우, 해당 건축물은 물론 주변지역까지 광범위한 재난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재난영향성을 검토하고, 관리주체의 일상적인 재난관리 운영계획 수립 및 시행, 이용자에 대한 재난예방 교육·홍보·훈련과 이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장비 구축 등의 종합적인 재난방재시스템을 구축하는 제도가 절실히 필요했었다. 다행히 최근 올 초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약칭 초고층법)이 국회를 통과해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고층건물 예방, 지진 등 재난에 대비해야

이번에 통과된 초고층 지하연계 복합 건축물 특별법안은 초고층의 주변지역에 재난관리를 위해 재난의 예방부터 대비 대응 및 지원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며 향후 초고층 재난을 방지하는 데 기초가 될 전망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고층법은 지난 2009년 3월 31일에 발의 됐으며 지난 2월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법적 장치로 탈바꿈됐다.

특히 초고층법은 초고층의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며 초고층 주변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초고층법의 필요성은 지난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사건으로 고층건축물의 화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빛을 더했다.

이에 특별법 시행 후에는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대해 건축허가 전 사전에 재난영향성 검토를 받아 설계에 반영해야 하며, 건축물 준공 후에는 재난예방 및 피해경감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피난안전구역 설치, 교육·훈련 강화 등 대비책이 마련되야 한다. 또한, 총괄재난관리자 지정, 종합방재실 설치, 초기대응대 구성 등 각종 재난의 예방은 물론 대응상의 큰 변화로 대형 재난의 확산 방지에 기여할 전망이다.

당시 이 법을 발의한 유정현 의원은 “현행 제도에서는 초고층 및 지하연게 복합건축물에 대한 별도의 정의조차도 없었으며, 이들 건축물의 안전관리를 각 개별법으로 관리하고 있어 개별법 틈새에 따른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등 통합적 재난관리 시스템 부재로 화재, 폭발, 테러 등 각종 재난발생 시 대규모 재난으로 확산될 우려가 매우 큰 상태”라며 “앞으로는 본 법안의 통과로 초고층 건축물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재난관리체계 구축 및 대응체계 강화를 통하여 주요 재난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적당한 높이가 사람살기에 적당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더 높은 고층 아파트를 선호한다. 하지만 정말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최근 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나무가 보통 자라는 높이 정도가 사람이 살 수 있는 높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층수가 2~3층 정도라는 말이다. ‘땅심’이 떨어지는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그에 따른 여러 정서적 육체적 장애를 겪기도 하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초고층 아파트 관련 재난위험성 및 고층증후군 대해 “고층 아파트 대해 문제점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적다”며 “지금처럼 고층 건축 추세와 이에 발맞추는 듯 한 연구풍토 속에서는 더 어렵다”고 꼬집었다 일본 동해대 의대 오우사카 후미오 교수 또한 “일본 언론은 광고주와의 관계 때문에 초고층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초고층에 증후군에 관한 해결 문제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층건물은 건축규모의 대형화, 건축물의 지하심층화, 초고층화, 밀집화 및 노후화 등으로 재난발생시 대형 인명 피해 우려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소규모 재난발생의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국민의 안전욕구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수준도 한층 커져가고 있다.

반면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층건물 재난시 이를 전문적으로 지도 감독할 재난관련 전문가의 필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결국 자연재난이 인적재난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