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열차의 사고와 고장이 끊이질 않고 있다. 주말과 휴일을 낀 지난 5월 6∼8일에도 사흘 연속 운행 도중 문제를 일으켜 승객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일요일이던 8일 오후 2시경 부산발 서울행 KTX 130호의 대차(객차 연결 차량)에서 과도한 진동과 소음이 생겨 광명역에서 비상점검을 해야 했다. 이렇듯 끊이지 않은 KTX 열차사고는 자칫 대형재난으로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재난포커스 - 이정직기자(jjlee@di-focus.com)>

KTX 열차 또 열차사고

지난 5월 10일 용산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KTX 열차가 운행 도중 연이어 정비를 받았다. 이로 인해 열차운행은 10여분 지연됐으며, 승객들은 불편을 겪었다. 당시 코레일에 탑승했던 다수의 트위터 사용자들은 이날 7시50분 용산을 출발한 광주행 KTX 열차가 광명역에서 ‘운전실을 점검하겠다’며 정차한 뒤 곧 운행을 재개했으나 천안아산역에서 다시 정비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실시간 댓글을 달았다.

이로 인해 열차는 종착역인 광주역까지 11분 지연 운행됐으며, 승객들은 이 같은 사실을 트위터 등을 통해 전파했다. 당시 열차에 탑승하고 있던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KTX 불안하다더니 보통일이 아닌 것 같다”며 “승객들 불안 커지지 않도록 KTX 사장님은 각별히 안전점검을 챙겨야겠다”고 전했다.

코레일 측은 이번 상황에 대해 “오늘 지연운행은 차량고장 때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제동장치 이상 신호가 떠서 기장이 확인해보니 운전석 우측에 놓여있던 기장의 승무용 가방이 기울어지면서 제동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이를 조치한 후 정상 운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4월 8일에는 오후 운행 중에 KTX 열차에서 연기가 나고 진동과 소음이 발생한 사고가 나타났다. 당시 사고의 원인은 엔진이 녹아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KTX 열차는 8일 오후 2시쯤 부산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KTX 130호 열차는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을 지나 광명역으로 가던 도중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18호 대차에서 진동과 소음이 발생했다.

이 열차는 속도를 시속 260여km에서 170km로 감속, 광명역으로 진입한 뒤 비상 점검 후 재출발했다. 감속 과정에서 일부 바퀴의 마찰 연기와 진동 등이 발생, 승객들은 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 KTX 열차의 엔진 사진을 보면, 열차 밑부분에 있는 엔진 덮개는 고열에 녹아 있었으며, 엔진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또 회전 운동이나 수직 운동을 하는 축(軸)을 지지하는 베어링(bearing)도 열에 녹아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열차는 문제를 일으키고도 광명역부터 서울역까지 계속 운행됐던 것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과열된 엔진을 식히려고 속도를 줄였다. 비상점검 후 저속운행 구간인 서울역까지 운행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제의 KTX 열차 엔진은 이미 310만km를 달려 KTX 규정 엔진 교체주기인 250만km를 60만km나 초과했지만, 엔진을 교체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KTX 열차사고는 어제 오늘만의 사고 아냐

이같이 KTX 열차사고는 어제 오늘만의 사고가 아니라 철도 승객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승객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한 사고부터 부지불식간에 스쳐 지나간 고장까지 올 들어 운행불안 사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고속철도(KTX) 사고가 일반 철도에까지 확산되고, 시민의 발인 전동차 고장은 거의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국민들은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가 나는 게 아닌지 두려워하고 있다. 안전 정비를 더욱 철저히 한다는 주말연휴 기간에도 KTX의 고장·사고는 예외가 아니었다.

코레일 측이 운영하는 KTX의 고장과 운행장애가 2010년부터 급증하고 있는 점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KTX가 본격 운행된 2007년 이후 2009년까지 고장사례는 연평균 26건이었으나 2010년 53건으로 증가하더니 올해엔 반년도 안돼 벌써 25건을 넘어섰다. 일반철도 사건·사고도 급증해 2009년까지 연간 170~180건에서 2010년엔 211건으로 증가했고, 그 추세가 올해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직원들의 일시적 근무태만이나 우연의 일치로 넘기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코레일 측은 “조그만 문제가 발생해도 미리 경고하는 안전시스템이 종전보다 더 발달했기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지만 이런 인식이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코레일 측이 갑자기 조직을 개편하고 인력을 재배치한 시점이 사고와 고장이 급증한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도 그렇다. 선로와 기관차 등이 노후해 교체 주기가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많은 승객, 고속 질주, 지하 운행 등은 조그만 사고라도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시스템 불안 VS 정비인력부족

오죽하면 코레일 허준영 사장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4월 초 KTX를 타고 가다가 대전 부근에서 멈춰 섰을 때 주위 승객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이런 일을 겪은 후 4월 13일 KTX 정비를 항공기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다시 열차 고장으로 승객을 예비열차로 옮겨 태우는 일이 벌어졌다.

KTX는 최대 900명까지 승객을 태우고 하루 200편 이상 운행하고 있다. 광명역 사고 때는 열차가 속도를 시속 80㎞ 아래로 낮춘 상태여서 다행히 큰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시속 300㎞로 달리다가 사고가 나면 어떤 참사를 초래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반면 KTX 고장률은 2009년 0.04%(전체 5만7519건 운행 가운데 23건)에서 작년 0.09%(5만9087건 중 53건)로 악화됐다.

코레일은 작년 3월부터 투입한 국산 KTX-산천 열차가 아직 운행 시스템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승객들은 작은 사고가 자꾸 터지는 것이 왠지 큰 사고를 예언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다. 사고와 고장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조직 어딘가에 나사가 풀려 있거나 피로가 누적돼 있다는 뜻이다.

 노조에선 허 사장 취임 후 직원을 5000명이나 줄였고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는 등 경비절감 위주로 조직을 운영한 탓이라고 주장하는 곳도 있다. 코레일은 KTX의 정시율(定時率)이 99.8%로 프랑스(79.0%)·이탈리아(90.3%)보다 월등한 세계 1위라고 자랑해왔다. 그러나 2005년 일본 효고(兵庫)현 열차 사고의 경우 기관사가 전(前) 역에서 지체된 1분 30초를 만회하려고 곡선 구간에서 속도를 늦추지 않는 바람에 열차가 탈선해 107명이 사망했다.

정치권에서도 대책 요구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자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5월 7일 부산발 서울행 KTX열차가 20여 분간 갑자기 선로에 멈춰선 데 이어 5월 8일에는 심한 소음과 진동으로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며 ‘고속철’이 아닌 ‘고장철’,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KTX가 뒤집어쓰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5월 9일 브리핑을 통해 KTX의 고장, 사고건수는 2009년 20여건에서 지난해에는 50건으로 두배 가량 증가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전 대변인은 특히 올해는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25건의 사고를 기록하고 있다며 코레일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입증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성토했다.

 KTX사고의 주요 원인은 일반 KTX의 경우 부품의 노후화가 주원인인 반면, KTX 산천의 경우는 제조상 동체 구조의 결함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KTX의 경우 주행거리 3500㎞마다 검사하던 것을 오히려 5000㎞당 한번으로 늘렸고 2주마다 하던 정밀검사는 아예 없애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전 대변인은 근본적인 대책수립은 커녕 오히려 관리규정이 느슨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대형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안전대책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전 불감증에 빠진 허준영 KTX사장을 당장 해임하고 전문성과 안전의식이 투철한 인물을 KTX사장으로 임명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KTX-산천에 대해 코레일측 사실상 ‘리콜’

한편 이곳 저곳 문제를 많이 일으킨 KTX-산천에 대해 코레일측이 사실상 ‘리콜’을 요청했다. 코레일은 5월 12일 KTX-산천호에 대해 제작사인 현대로템에 모터감속기 등에 대해 정밀점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그동안 KTX-산천에서 결함 등이 발견되면 제작사에 점검보완을 요구해 왔으나 차량 모두에 재점검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현대로템 관계자는 “문제가 생긴 차량은 수리에 들어갔다”면서 “나머지 차량은 정밀재점검을 벌였지만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해 공방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체계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재난전문가 필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옛말이 있다. 지금 코레일 측이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금언이다. 그런데 KTX 문제가 터질 때마다 나오는 코레일 측 해명을 보면, 이러다 정말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KTX 정차 사고가 나도 “이중삼중의 안전장치 때문에 열차 스스로 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 위험 천만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의 대형 고속철사고를 봐도 항상 작은 사고들이 전조처럼 먼저 터졌다. 코레일은 지금이라도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KTX의 운행시스템 전반을 냉정하게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 1998년 ‘독일 고속열차(ICE, 이체에)사고는 작은 결함이나 작은 실수가 순식간에 큰 재난으로 이어진 사례다.

작은 정비 불량 하나가 큰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인해 첨단 기술, 첨단 서비스를 자랑하던 ICE와 첨단 기술국 독일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열차사고 등 기업재난이 일어난 주 원인은 부실정비와 직결된다. 재난 전문가들은 국민들 불안감을 키우는 코레일의 부실정비는 결국 제2,제3의 기업재난 파장을 계속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