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되면서 한반도에 예기치 않는 변수가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름이면 항상 한반도와 열본열도를 휩쓸고 가는 태풍과 집중호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일찍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한반도를 북상하는 태풍도 심심치 않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올해 태풍과 집중호우 등이 그저 지나가는 자연재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일본원전사고 때문이다.

<재난포커스 - 이정직기자(jjlee@di-focus.com)>

일본, 여름철 태풍의 계절

지난 5월 30일 일본 남부에서 호우를 동반한 강력한 태풍이 북상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비상이 걸렸다. 5월 29일 강력한 제2호 태풍 송다(Songda)가 오전 일본 남부의 규슈 지역에 상륙한 뒤 북상하면서 30일에 걸쳐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강우량은 규슈 남부 180㎜, 주고쿠 등 중남부 200∼250㎜, 본토 북부 100㎜,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인 도호쿠 80㎜ 등이었다.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지역인 도호쿠 지역의 많은 비는 후쿠시마 제1원전발전소를 비상체제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각종 장비가 침수되지 않도록 높은 곳으로 옮기는 한편 창고 등 각 건물 입구에 흙을 쌓아 침수에 대비했다. 또한 각종 기자재가 태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도 강화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는 사고 당시 수소 폭발 등으로 지붕이 날아가거나 벽이 무너진 상태여서 비와 바람에 노출된 것이 문제였다. 이는 빗물에 쓸린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바다에 흘러들 가능성이 있으며 원전 곳곳에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1일 도쿄전력에 따르면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 방사능 오염수는 무려 20조 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한 것도 이에 무관하지 않다. 20조 베크렐은 1년간 외부 방출이 허용된 방사성 물질의 약 100배에 해당되는 양이다. 오염수 양은 250t이나 된다. 이렇게 유출된 방사성 물질은 남쪽 해역으로 흘러가다가 구로시오를 타고 태평양 동쪽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 고여 있는 고농도 오염수는 10만t을 넘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폭우, 태풍 등 기상재해가 발생할 경우, 엄청난 고농도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다. 방사성 세슘이 바다에 흘러들어 퍼지는 경로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5년 후엔 북미, 10년 후 아시아 동부, 30년 뒤에는 태평양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소노 고시 총리 보좌관은 “후쿠시마 원전이 태풍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면서 “방사성 물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태풍에 대한 최대한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태풍, 한반도 원전 방사능 영향 미치게 해

하지만 이런 집중호우로 인한 방사능 유출문제가 단지 일본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특히 태풍철이 다가오면서 일본 원전은 비상체제에 돌입했으며 이 여파는 고스란히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대두됐다. 오는 6월부터 8월까지 10여개의 태풍이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 중 일부는 한반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 태풍 발생이후 해수로 흘러들러가는 오염물질이 고스란이 국내 바다로 올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다.

부경대·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홍철훈 교수는 한 언론사의 기고에서 “6월부터 태풍 시즌이 시작되면 한반도 연해 바다의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수유동이론에 근거해 볼 때, 태평양 저위도에서 태풍이 발생해 일본 쪽으로 북상하면 혼슈 남해연안을 따라 규슈 서쪽을 거쳐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파동과 흐름이 발생할 수 있다” 며 “태풍 통과로 해수면 변화가 야기되어 파동이 발생하고, 태풍이 혼슈에 상륙하기 전까지 혼슈 남해연안과 평행한 바람이 계속 불기 때문에 흐름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또 홍 교수는 “무조건 방사능 피해를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어떠한 가능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며 “방사능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때 국내 매스컴은 하나같이 피해가 없다고 보도했지만, 곧이어 국내 모든 방사능 측정소에서 미량이나마 검출됐고 이런 예단은 편서풍 영향만 우선 고려했을 뿐 한반도 주변 기압분포에 따른 변화는 무시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홍 교수는 “한반도는 태평양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구로시오 해류의 영향만 고려해선 안되며 만일 태풍 영향으로 혼슈 남해안에서 규슈 서방해역까지 방사능 피해가 확대된다면 이 해역이 주 산란장인 동해 오징어는 물론, 이동성 회유어족인 동중국해 전갱이·고등어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들이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 고 강조했다.

반면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 기후물리학 허창회 교수는 “일본 방사능이 동풍을 타고 한반도로 직접 유입될 가능성이 없다” 며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 상공에는 일년 내내 동풍이라고 불릴 만한 바람이 불지 않는다. 지구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그리고 자전축을 지금보다 훨씬 더 눕히지 않는 한 중위도에서는 동풍이 불 수 없다” 강조했다. 허 교수는 “물론 기압계 형태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중위도에서도 지역에 따라 일시적으로 동풍이 불수도 있다” 며 “하지만 태풍이 일본 남쪽 지역에 상륙한다면 우리나라 동해안에는 동풍계열의 바람이 불어 일본 방사능이 한반도로 직접 유입되지 않는다” 고 말했다.

허 교수는 오히려 한국이 정작 걱정해야 할 원전 사고 지역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 말한다. 허 교수는 “중국에서 이번 후쿠시마 원전과 비슷한 규모의 사고가 났다면 한국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방사능 재앙에 처했을 것”이라며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돼 상당기간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방사능은 국경이 없다

현재 진행형인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몰고 올 향후 파장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정확히 예측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이다. 한 예로 지난 1986년 체르노빌에서도 일어난 원전사고가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이웃 나라들에 큰 피해를 줬다. 당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오염이 가장 심한 ‘붉은 숲’지역의 경우 평균 방사능 농도는 10마이크로 시버트로 평균치의 100배를 넘고 있는데, 붉게 변해버린 소나무와 말라 비틀어진 가지들이 폐허로 변한 도시를 상징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원전사고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웃 벨라루스는 정작 우크라이나보다 체르노빌 방사능의 타격이 더 컸음에도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로 방사능 피해로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 아직도 벨라루스는 전 국토의 23퍼센트가 세슘137에 오염돼 있다. 고멜 등 오염지역의 어린이 4만 여명은 매년 한달 동안 전문치료센터에 입원해 검사를 받고 있다. 고멜의 오염지역은 대부분 출입이 금지돼 있고 그 나마 오염이 심한 곳에는 갈 곳 없는 노인들만이 살고 있다.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의료기관들은 세슘에 오염된 흙을 모두 파내고 새로운 흙으로 교체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 곳에선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돌볼 수 없어 대부분 수도 민스크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오스트리아도 피해 당사자 중 하나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남서쪽에 위치해,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바람의 영향으로 피해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체르노빌 방사능이 방향을 바뀌어 서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오스트리아는 사태파악 이후 신속하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어린이들의 모래나 흙놀이는 물론 채소나 과일 섭취도 제한하도록 권고했으며, 원전사고 이후의 건초는 젖소가 먹지 못하도록 하는 등 까다롭게 야외활동과 식품 섭취를 제한해 비교적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내고 있는 유엔 방사능 과학위원회(UNSCEAR)는 원전사고 이후 어린이 갑상선 암 환자가 최대 100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하기도 있다.

또 다른 변수 바람 방향

이에 반해 국내 기상청은 바람의 방향으로 인해 앞으로도 후쿠시마 방사능이 한반도로 밀려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상학자들은 장마가 있는 시기에 소량이나마 방사능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편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맹 17개국은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에 따른 태평양 방사능 오염실태를 공동 조사하기로 했다.

지난 6월 5일 일본 노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IAEA 가맹 17개국은 위 공동조사를 실시하는데 합의하고, 향후 4년간 자국 해역에서 조사한 방사성 물질의 농도 자료를 상호 교환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예정이라 말했다. 수집된 데이터 베이스는 태평양 전체의 오염 상황이나 해산물에 의한 건강 피해를 조사하는데 활용된다. 이들 나라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는 6일부터 열리는 IAEA 정기 이사회에서 이같은 계획을 보고하고 공동조사를 본격 추진한다.

현재 이들 나라외에 미국도 협력 의사를 피력했으며 IAEA에 가맹하지 않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와도 자료 교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처럼 다수의 국가가 한데 뭉쳐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는데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환경 대재앙 극복하기 위한 전문관리 필요

이번 일본의 연이은 원전폭발은 일본정부에서도 장담할 수 없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방사능 물질 유출 여부와 농도성에는 호언장담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이 미래 재난이 닥쳤을 때 이에 대비하는 태세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수립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또 일본 방사능 물질 유출로 인한 이차적인 환경오염 유발 가능성에 대비하여 실책과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이번 원전사태에서 노출된 일본 정부, 도쿄전력 등의 어설픈 대응 태세를 반면교사로 삼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매뉴얼도 효율적으로 다듬을 필요성도 있다.

또 이를 전담할 수 있는 재난관련전문가의 양성 또한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결코 일본은 한반도와 먼 나라가 아니며 일본의 이러한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수 없는 여건도 아니다. 정부가 어떠한 대응책과 논리로 대응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