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고예방과 재난관리계획, 훈련 등과 같이 모형을 들여다 보면 사고현장에서의 환자분류와 응급실에서의 대처 등이 민방위형에 입각해 운영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병원 역시 일반적으로 지진이나 화재가 났다는 가정하에 연 1회 정도 훈련을 실시하고 있고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재난 사고가 대량의 인명피해를 유발하고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다수의 경우 경증환자가 중증 응급환자보다 먼저 인근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현장에서의 중증도 분류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국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으로 병원의 재난으로 인한 많은 환자의 병원 유입은 병원에 2차적인 재난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 국내 병원들의 재난대책이라는 것이 거의 화재 진압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형식적인 서류상의 내용으로만 수립돼 있어 병원 내부에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많은 피해가 발생할 요소가 다분하다.

실제로 서울시내 의료기관 중 병원재난대책의 실제적인 개념을 토대로 재난대책을 수립한 병원은 단 2곳에 불과한 것으로 학회에서 보고된 바 있다. 응급의료센터는 병원내 재난이나 병원외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환자들을 접하는 1차적인 장소여서 재난에 의해 유입되는 환자가 응급의료센터의 수용능력을 초과하거나 재난으로 응급의료센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병원내 별도 장소가 내정돼 있어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병원 재난의 경우응급의료센터 옆 공간을 경증환자를 위한 장소로 지정하고 병원내 재난으로 인해 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 응급의료센터와 떨어지고 출입이 자유로운 원내 장소나 병원 건물 밖의 운동장을 현장 진료소로 구비해 놓고 있다”며 “재난신고가 접수되면 응급의료진은 응급의료센터의 기존환자를 퇴원, 전원 점멸 등의 조치를 치해 응급의료센터 공간을 재배치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증진에 맞춰 진 병원 프로그램
현재 보건소나 병원들의 주요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주제가 대다수 건강증진 항목으로 응급의료 관리는 전체 교육시간의 8%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이 중 재난 준비를 위한 주민 교육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다. 재난관리 준비도를 평가할 경우 병원응급실 치료팀의 인력과 장비 등은 비교적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으나 병원의 재난관리계획과 관련 해 전혀 훈련되지 못하고 있어 병원의 응급의료체계, 재난대응 계획, 훈련을 통한 주민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맞춰 신상진 국회의원(한나라당)은 재난의료에 관심있는 대한재난의료협회, 대한응급의학회 회원과 각계 학회 회원들과 함께 ‘재난의료에 관한 국회 공청회’를 연 바 있다. 이날 울산대학병원 응급의학과 홍은석 과장이 ‘재난의료대응팀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제시했으며 서울아산병원 임경수 응급의학과장이 국내 재난준비사항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또 광주응급의료정보센터도 광주·전남 응급의료기관 담당자(응급,전산,통신) 200여명을 대상으로 대형재난·재해 대비와 관련한 워크숍을 갖고 관련기관간 협조사항에 대해 긴밀한 의견교환을 나누는 등 응급의료기관인 일부 병원에 국한돼 재난재해 대비 움직임이 보이고 있을뿐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어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병원관계자 “별 문제 될게 없다”
현재 300인 이상 규모의 병실을 갖고 있는 대형병원은 소방계획서에 의거 1년에 한번 소방서와 합동으로 대형화재에 대비한 모의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재난에 대비해 어떤 활동과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J병원 총무과 비상계획팀 관계자는 “특별하게 실시 하는게 없고 모든 병원이 마찬가지 상황이다”라는 무책임한 말로 일관했다.

또다른 K병원의 자산관리팀 관계자는 “갑작스런 정전에 대비해 세워둔 지침은 없고 UPS 장치를 통해 자체 발전기로 전기를 충전해 병원에 공급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시각을 보였다. 이 관계자에 병원자체에서 어떤 재난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지 되묻자 “병원은 장소만 빌려줄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일부 병원들은 ‘재난’이란 말로 접근하면 입을 굳게 다물거나 “자료를 줄 수 없다”며 병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발언을 서슴치 않아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삼풍사고 당시 이를 관장할 만한 법적 근거인 재해에 관련된 재난관리법어 없어 사고현장은 의학적 명령체계를 확보하지 못해 응급처치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장비와 통신 체계가 준비돼지 못해 더 큰 화를 입었던 전례가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후 인위적 재해에 대한 재난관리법이 제정, 행정부 수준별로 매년 합당한 재난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난관리법에는 보건의료 측면에서의 현장대응, 응급의료, 교육, 훈련 등을 포함하고 있으나 여전히 부처간 역할 명시가 미흡한데다 현장 응급대응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운영 지침이 없어 업무분장, 재난상황에 따른 시나리오적 대비계획의 틀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 관계자들의 ‘대책없는 대책’이 또 다른 화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복지부, 의료법시행규칙 개정
복지부는 지난해 중환자실의 시설이나 인력, 장비기준과 관련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올해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밝힌 ‘의료법시행규칙개정안’은 진료환경과 재난 시 환자의 안전 등을 고려해 지상 3층 이상과 더불어 지하에도 입원실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과 함께 중환자실의 의사 당직실은 중환자실과 인접한 곳에 두도록 했으며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반드시 전담 전문의를 두도록 의무화 했다.

병상 당 면적을 보면 중환자실은 10㎡, 신생아 중환자실은 5㎡ 이상 확보해야 하는 조항도 함께 달았다. 다만 중환자실을 설치하는 의료기관의 경우 입원병상의 5%를 의무적으로 중환자병상으로 설치하도록 한 규정은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만 적용하고 있다.

수요자 만족도 차원의 재난관리 필요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이재은 소장은 지난 7월 말 ‘재난관리의 수요자 중심 접근과 재난 및 안전관리에 대한 인식도 조사’ 세미나를 통해 “재난관리도 수요자에 대한 만족도 제고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힌 뒤 “재난관리나 위기관리는 다른 어느 학문 분야보다도 제학문적 접근이나 통섭 이론적 성격을 기본 특성으로 하고 있어 다양한 분야의 한계 전문가와 실무자들이 함께 논의해보는 담론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류상일 박사는 ‘한국의 재난관리 기능과 조직별 역할’이라는 기조 발표에서 “국내 재난관리체계는 그간 재난 유형별 대처와 부처 및 병원별로 재난에 독자적으로 대응해왔다”며 “이로인해 네트워킹의 부재와 인력 중복 투입에 따른 재난관리체계의 비효율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병원 재난관리 어디까지 왔나
과거의 홍수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 뿐 아니라 건물붕괴와 같은 인적재난과 함께 IT발전으로 인한 신종재난이 등장, 유형도 다양화 되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재난관리를 재난의 예방·대비·대응 및 복구를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병원 역시 재난관리에 있어 재난에 대한 각종 피해상황을 수집, 피해영향 평가 단계를 시작으로 재난 대응과 복구를 거쳐 재건하고 재난 발생 이전으로의 원상복구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재난 발생 이후 같은 재난에 대한 대비를 통해 사전 재난예측과 재난 경고로 피해확산을 저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우리나라 병원들은 명목상의 재난관리계획만 세워둘 뿐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병원은 재난관리위원회를 구성, 병원 진료권역 내에 있는 여러 자원을 감안한 포괄적 재난관리계획을 세우고, 지역사회를 포함한 훈련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지원체계 붕괴 초래하는 병원재난
이와 관련 최근 울산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홍은석씨는 ‘재난응급의료의 발전을 위한 제안’을 통해 재난의료 전담부서와 재난 응급의료 매뉴얼, 지침서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재난의료지원팀 구성, 재난 통신망 재정비 및 구축, 재난의료법(병원 및 병원전단계) 제정, 재난병원 지정 및 지원(개인 보호장비 및 오염제거 시설)을 통해 병원을 최소 72시간 동안 독립적 운영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재난관리체계 구축에 있어 재난의료는 필수적이라며 정부투자를 통한 인프라 구축과 대형재난별 재난대책마련, 유기적인 협조체제 구축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