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곤(와세다대 구조공학 박사ㆍGL월드텍 대표)

어릴 때 박치기왕 김일이 나오는 프로레슬링이 큰 인기였다. 마지막에 김일의 박치기로 대 역전승을 거두는 통쾌함과 함께, 상대편 선수가 비겁하게 김일의 아픈 곳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많은 분노를 느끼며 흥분한 적이 있다.

어릴 때는 그러한 공격이 치사한 것으로만 여겼는데, 가장 효과적인 공격을 생각하면 상대의 약점만큼 좋은 곳도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싸움에서 공격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곳은 상대의 약점으로, 이것은 비단 싸움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경우에 적용되며 지진재해도 마찬가지다. 즉 지진에 의해 구조물이 피해를 입는 부분이 그 구조물의 가장 큰 약점이다.

지진피해를 조사한다는 것은 구조물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부분을 개선함으로써 다음 지진에는 전보다 조금 더 안전한 구조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지진대책에 대해 가장 참고할 곳은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국토 전체가 지진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지역에서 여러 형태의 지진이 발생하며, 그에 따른 지진피해 유형도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림1) 일본의 지진분포

이러한 지진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수많은 재해 사례에 대하여 개선해 나가는 것으로, 이는 곧 국민의 재산과 인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독히 보수적인 관료행정으로 경제력에 비해 후진적인 정책이 많은 일본에서도 지진에 관해서는 순발력 있는 행정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지진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지진정책에 영향을 끼쳤던 대표적인 지진과 지진재해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갖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지진의 무서움과 어려움을 새로이 일깨워준 1995년의 고베지진에 대해 소개한다(그림 1).

지진재해로부터 안전기준 수립
공학적인 근거 없이 경험만으로 이루어지던 건축방식이 근대에 들어 품질관리가 가능한 철근콘크리트구조나 철골구조가 적용되면서 공학적인 건축방법과 함께 안전을 보증할 수 있는 구조적인 기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안전기준은 아이러니하게도 재해로부터 나와, 일본의 경우 지진재해가 안전기준의 바로미터가 되어 서양의 기준을 모방하던 다른 정책과 달리 독자적인 기준을 확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면서 1875년부터 과학적인 지진 관측이 시작되었으며, 1891년 역사상 최대의 미노지진을 계기로 지진에 강한 건축구조연구(내진설계)가 시작되어 1916년 ‘건축물의 내진구조’라는 성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실무에 적용하기에는 일반의 이해가 부족해, 1920년 건축에 관한 본격적인 법률 ‘시가지건축법’에서 내진설계는 규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건축에 관한 본격적인 법령으로 시행된 계기는 1923년 계엄령까지 선포되었던 동경대지진(정식 명칭은 관동대지진)으로, 이 지진에 의해 내진설계가 의무화된 ‘시가지건축법’이 개정되어 처음으로 지진재해와 건축법이 연계되기 시작했다.

1948년 후쿠이지진을 계기로 1950년 지금 사용되는 법률의 기본이 되는 ‘건축기준법’이 제정되었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재해에 관한 개념이 확립되어, 1947년 구조 및 보호를 목적으로 한 법률 ‘재해구조법’이 제정되었으며, 1961년 재해 전반에 관한 기본적인 법률 ‘재해대책기본법’으로 정리되었다. 이 법에 의해 정부에 ‘중앙방재회의’가 설립되어 종합적이며 계획적인 방재행정이 정비되고 재해에 관한 전문조사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도 결국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언제 지진으로 재해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본에서 조차 이러한 법률을 비웃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2005년 11월 국가에서 공인한 건축설계사가 건설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물의 안전을 계산하는 구조계산서를 의도적으로 위조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경기회복에 들뜬 일본에 찬물을 끼얹으며 상도덕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내진기준이 부족한 아파트와 호텔이 99동이나 건설되어 인명 및 재산에 관계되는 심각한 문제로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많은 피해자가 신음하고 있다. 구조계산서는 전문가가 보아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산결과가 방대하고 공학자의 판단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어, 사실상 공인받은 건축사(우리나라의 경우 구조기술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이번 사건은 신뢰 받아야 될 전문가가 이를 악용하여 조작을 했기 때문에 막을 방법이 없었다. 비슷한 유형으로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보안 경비회사 직원이 가입자 집에 강도짓을 한 것처럼, 이러한 사건은 이미 그 사회의 도덕적 기능이 마비되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어 몸서리가 쳐지며, 2중 3중의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올바르게 기능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진
미노지진 (1891년, M8.0추정)
7,273명이 사망했고 14만동 이상의 주택이 붕괴된 일본 역사상 최대의 지진이었다. 또한, 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6m 높이의 단층이 지표면에 형성될 정도로 단층의 움직임이 활발해, 이로 인해 단층의 운동이 곧 지진이라는 학설이 주장되어 지진연구의 큰 지표가 되었으며, 내진설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진재해예방조사회’가 설치되었다.

관동대지진 (1923년, M7.9)

	(사진1) 관동대지진 당시 2차 재해인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일본의 수도 동경을 강타하여 14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낸 최악의 재난으로 일본 지진정책의 근간이 되는 지진이다. 인명피해의 주원인은 전보에서도 소개했지만, 구조물의 붕괴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닌 2차적인 재해인 화재로, 지진에 의한 도시기능의 마비는 모든 대책을 무기력 하게 하였고 너무나 빠른 화재의 번짐은 소화 작업은 물론 대피도 불가능하게 했다.

이와 같이 도심형 지진에서 화재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화재의 발생원을 막거나 초기 진압이 제일 중요하며 대형 화재로 발전되었을 경우에는 소화활동 및 피난이 가능한 공간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사진1). 이를 위해 관에서는 소방도로 및 방제시설의 충실과 각 지역마다 대피장소를 확보하여 국민들에게 충분히 인지시켜야 하며, 국민들은 방재의식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 및 반복적인 교육과 이해로 가능하며, 우리의 민방공훈련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행정적인 요식행위로 가볍게 행동하는 한 재난이 발생하였을 경우 큰 화를 입게 된다. 관동대지진의 경우에도 방재훈련이 안되어 많은 사람이 패닉을 일으키며 불을 피해 무조건 강에 뛰어들어 익사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 지진을 계기로 내진설계가 의무화된 ‘시가지건축법’이 개정되었으며, 이날을 ‘방재의 날’로 지정하여 가상 지진체험 등 다양한 이벤트로 지진의 무서움을 알리며 방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필자의 장녀도 일본서 유치원 다닐 때 머리보호용구로 대용되는 방석을 상시 지참했고, 다양한 방재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후쿠이지진 (1948년, M7.1)

	(사진2) 후쿠이지진으로 다이와 빌딩이 붕괴된 모습.

3,769명이 사망했고 36,148동의 건물이 붕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흔들림이 심해 이전에 사용하던 진도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된 대지진이었다(사진 2).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로 판잣집이 중심이어서 건축피해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은 어려웠으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피해가 적어 내진설계에서의 철근콘크리트구조의 가능성이 확인되었고, 지반이 약한 시가지에서 60% 이상의 건물이 붕괴되어 지반의 영향이 건물붕괴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다. 이 지진을 계기로 1950년 ‘건축기준법’이 제정되어 전국적으로 적용되었으며, 방재연구소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방재연구가 시작되었다.

니가타지진 (1964년, M7.5)

	(사진3) 니카타지진으로 인한 부동침하로 아파트가 전도되었던 사례.

인명피해가 26명으로 기적적으로 적었으나, 4m높이의 쓰나미 등으로 도로·선박·석유탱크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지진피해의 특징은 강변주위 매립지에 건설된 많은 철근콘크리트구조의 아파트가 구조적인 피해 없이도 부동침하로 기울거나 넘어진 것이다(사진 3).

이는 딱딱하게 보이던 땅이 지진의 흔들림으로 액체 같이 되어 건물을 받칠 능력이 없어져 발생한 것으로, ‘지반의 액상화’라고 하여 물에 젖은 흙을 그릇에 담은 후에 그릇을 두드리면 느슨하게 연결되었던 흙입자 사이가 치밀해지며 그 사이에 있던 물이 위로 솟구쳐 표면이 액체와 같은 상태가 되는 현상이다.

이 지진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에서 액상화연구가 시작되었고, 액상화가 발생하기 쉬운 매립지에서의 건축에는 각별한 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당시는 일본 경제부흥기로 TV가 널리 보급되어, 지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일반 국민에게까지 여과 없이 전달될 수 있어 지진재해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도까치오끼지진 (1968년, M7.9)
52명 사망, 763동의 건물붕괴로 규모에 비하여 피해는 적었으나, 철근콘크리트구조물의 피해가 컸다. 특히 재난발생 시 피난처로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건물보다도 엄격한 기준으로 튼튼하게 지은 학교건물이 많이 붕괴되어,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학교건축에서 많이 보이는 허리벽과 내림벽이 상하에 설치된 기둥이 마치 칼로 자르듯이 사선방향으로 잘라지며 갑자기 파괴되어 구조물이 붕괴되어버린 것으로, ‘단주(짧고 두꺼운 기둥)의 전단파괴’라고 한다.

이러한 단주의 전단파괴는 순식간에 구조물이 붕괴되기 때문에 피난 여유가 없어 인명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파괴형식이다. 이 지진이후 가능한 한 단주의 사용을 억제하고 있으며, 전단파괴에 대항하는 철근(늑근이라 함)의 보강을 기둥 전체에 치밀하게 하는 등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규정이 강화된 법령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야기켄오끼지진 (1978년, M7.4)

	(사진4) 미야기켄오끼지진으로 인한 정전 때문에 시내가 암흑천지로 변해있다.

7,400동의 건물이 피해를 입은 것에 비해 인명피해는 노화된 블럭벽의 붕괴에 의해 18명이 사망한 것을 포함하여 28명으로 미약하였다. 이 지진의 특징은 인구 65만명의 대도시에 발생한 도시형지진으로 수도·가스·전기·도로 등의 Lifeline이 마비되는 등 도시형재난의 문제점이 확인된 것과, 저녁시간대에 발생한 것에 비해 화재 및 시민의 혼란이 적었다는 것이다(사진 4).

이는 4개월 전에 작은 지진이 있어 그에 따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여, 평소의 방재훈련이 충실하다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차재해도 방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 지진을 계기로 미야기켄(우리나라의 도에 상당)은 이 날을 ‘도민 방재의 날’ 로 지정하여 별도의 방재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 지진피해를 통해 내진기준이 강화된 건축기준법이 1981년 개정되었다.

1만명 사상자와 100조원 피해 발생한 고베지진

	(사진5) 고베지진때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전도된 모습.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에 발생한 고베지진은, M7.3 규모로 6,434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약 5만명의 사상자와 64만동의 구조물 피해 등으로 100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재앙이었다.

300년 이상 지진이 없어 안전지역이라 생각하던 곳에서 발생한 대지진이라 피해도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에 끼친 공포는 엄청나 지진의 무서움과 어려움을 새로이 일깨어준 사건이었다. 건축물의 피해는, 무거운 기와지붕의 재래식 목조주택에 피해가 집중되어 약 5천명이 사망하여 대다수의 인명피해의 원인이 되었다.

철근콘크리트구조의 경우 건축법이 개정되기 이전의 건축물에 피해가 많았으나 이후의 건축물에도 피해가 있어 내진설계의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 피해의 특색으로 강성이 약한 1층 피로티에서의 파괴뿐만 아니라, 중간층에서의 파괴가 많이 목격되었다(사진5).

이는 구조형태가 바뀌는 부분에서의 힘의 집중현상이나, 도로변의 공간 활용을 위해 계단실 등을 한 곳으로 몰아서 중심이 편향(편심이라고 함)되어 건물 전체가 뒤틀리며 파괴된 것으로, 소아마비환자가 중심이 안 맞아 걷는 것이 불편한 것과 같은 이치이며 구조물 전체 균형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한 현장이였다. 이러한 건축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적인 형식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판단된다.

	(사진6) 고베지진때 고가도로가 붕괴된 모습.

	(사진7) 일본은 고베지진 발생 당시 화재에 대한 취약함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지진에 강하다는 철골구조도 피해가 있었으며, 특히 용접불량에 의한 피해가 많아 용접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할 필요성이 지적되었다. 한편 고층건물에는 피해가 거의 없어 일본 건축공학의 우수성이 확인 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TV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란 고가도로의 붕괴(사진 6)는 다행히 러시아워가 아닌 새벽 시간대에 발생해 큰 사고는 없었지만, 합리적이며 경제성만을 추구한 구조의 맹점을 드러내어 고가도로의 구조설계를 뒤바뀌어 놓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 고가도로에 대한 대대적인 보강공사가 이루어졌다.

고베 지진은 도시형재난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화재에 대한 취약함도 개선되지 못하여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를 느끼게 했다(사진7). 이를 바탕으로 1998년 ‘건축기준법’이 개정되어 내진구조에 대한 개선 및 추가규제 등이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