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만지진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현지의 유명 반도체 기업인 TSMC는 웬일인지 회사 수습은 뒷전이고 반도체 생산과 출하에 미치는 영향을 신속·정확하게 알리는 데만 열을 올렸습니다. 자사보다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 차원이었지만, 주변에서는 ‘괜찮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TSMC는 7시간 만에 24시간 고객문의 핫라인을 설치했고, 최고 경영진은 이틀 동안 2회의 현황보고를 했으며, 12개의 프레스 릴리스를 통해 대고객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습니다. 이와 함께 재난 대처 능력에 따른 부정적 보도를 막기 위해 지진발생 후 5일 동안 100개가 넘는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경쟁사들이 악성루머를 조장할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통계상으로 TSMC를 다룬 뉴스 가운데 86%가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PR협회로부터 모범적 커뮤니케이션 케이스로 선정되어 상까지 받았습니다. 덕분에 TSMC는 더욱 두터운 신뢰를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단시간에 정상 회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TSMC의 사례는 태안기름유출 사고의 중심에 있는 삼성중공업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삼성중공업은 사고발생 40여일이 지나서, 그것도 한 주민이 자살한 직후 “충분히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덧붙여 “정확한 피해현황이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사과와 대책발표는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대응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하게 규명된 정보 없이 시간에 쫓겨 임시방편의 졸속대책을 내놓게 되면 나중에는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충돌사고를 낸 크레인 예인선과 유조선을 삼성중공업이 관리(삼성물산으로 부터 임차 사용 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과해야 할 명분은 차고도 넘칩니다. 얼마 전 태안해경 조사에서 예인선의 항해일지 조작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때도 침묵을 지켰습니다. 마치 피해보상이든 뭐든 모든 것을 법대로 처리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식입니다. 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배신감마저 든다며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기름유출 사고가 제2의 기업 위기로 확대 재생산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입니다.

굳이 10년 전 TSMC의 위기대응 자세와 견주지 않더라도, 작금에 보여준 삼성중공업의 재난관리 대책은 실망의 차원을 넘어 허탈감 마저 들게 합니다. 기업의 흥망은 사회적 신뢰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 기업은 도태하기 마련입니다. ‘초일류 기업(?)’ 삼성이여,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굳게 다문 입을 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