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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 이 정도일 줄이야! 잇따른 화학물질 사고
화학물질 400여종 시장진입, 안전관리는 엉망
2013년 05월 03일 (금) 15:07:17 이정직 기자 jjlee@di-focus.com

안전관리
연이어 발생하는 잇따른 화학물질 사고로 안전불감증 사고가 도를 넘어 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 수는 4만3000여종에 이르며 매년 신규 화학물질 400여종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안전관리가 필요하지만 안전관리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 기자>


   
 
또 다시 터진 삼성정밀화학 울산 공장

지난 4월 14일 오전 10시 10분께 울산시 남구 여천동 삼성정밀화학 전해공장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돼 이 회사 근로자 2명과 인근 회사 근로자 4명 등 6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누출은 전해공장 인근 다른 회사 직원들이 “이상한 냄새가 나 머리가 아프다”며 퇴근하다가 경찰에 알려 경찰과 소방당국이 함께 출동해 확인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6명 모두 경미한 부상으로 간단한 검진을 받았으며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총 4㎏의 염소가 50분가량 누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사고는 가성소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염소처리 공정에서 배관 펌프가 잠깐 멈췄다가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이상이 생겨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염소는 위험물관리법 상 위험물은 아니지만 환경부의 사고대비물질로 분류돼 있다. 울산시는 극소량의 염소만 공장 밖으로 누출돼 2차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대형 공장에서 폭발과 유독물질 누출 등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국내 화학물질 취급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삼성정밀화학 울산 공장 염소가스 누출 사고의 경우 지난 1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어난 불산 누출 사고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재발했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안전 및 환경 부문을 대폭 강화하고, 지적이 있을 경우 사고에 준하는 엄중 문책을 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사고는 미연에 방지되지 못했다. 현장에 만연해 있는 안전불감증이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사고를 대하는 기업들 역시 ‘예방’보다는 ‘수습’에 무게가 실리면서 이 같은 위험을 자초했다. 재난안전전문가들은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습관화된 늑장대응이 안전사고를 더욱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발생한 기업들 안전사고 총 12건

이같이 화학안전사고는 지난해 말부터 올 4월까지 총 12건이나 된다. 그중 화학물질 누출 사고는 총 9건으로, 올 들어 벌써 7건이 대기업으로부터 발생했다. 안전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도 있었다. 한 예로 3월 14일 전남 여수 대림산업(000210)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폭발사고로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조사결과 대림산업 여수공장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을 1,000여건 위반하는 등 안전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림산업㈜ 여수공장 특별감독에서 모두 1,002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으며 이 가운데 442건은 사업주를 사법처리하고, 508건은 8억3,7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또 시정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여수공장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폭발과 화학물질 누출 사고의 경우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런 총체적 부실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대기업의 경우 사실상 자율적 관리에 맡겨놓고 사망사고가 발생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야만 수시 혹은 특별 감독을 하는 대증요법으로 대응을 해왔다. 이 같은 예는 지난해 경북 구미 불산 폭발 사고로 23명의 사상자를 내고, 지역의 농축산업이 황폐해지는 참사를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의 한 화학제품 공장인 (주)휴브글로벌에서 직원들이 20톤짜리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탱크로 불산(불화수소산)을 주입하던 중 탱크로리의 뚜껑이 열리며 폭발했었다. 이 사고로 직원 5명이 숨지고 마을주민 18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불산 유출의 여파로 마을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주민들은 후유증을 호소했다. 사태의 삼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늑장대응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도 무시할 수 없다
잇단 사고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들은 보상과 재발방지 약속 등 사건 무마에만 집중할 뿐 근본적인 대비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빈번한 원인을 생산설비가 늘어나는 속도를 안전관리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했다. 여기에다 사고가 터진 뒤 늑장 대응이나 은폐 움직임이 화마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이어진 사고 대부분은 시민들의 신고로 뒤늦게 알려져 당국의 대처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형 공장 등 업체들이 안전사고를 숨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데는 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이라는 근원적 병폐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재난안전 전문가들은 “안전 불감증이 뿌리내려 기업들의 늑장 대응이나 은폐가 최근 화학물질 누출사고의 주원인”이라며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환경부와 안전행정부 등 정부부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회사 입장을 밝히기엔 무리가 있다”며 “보상과 재발방지 약속 이외에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10조2항의 ‘중대재해’ 시 지체없이 신고하도록 한 규정에서 ‘중대재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3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이가 2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직업성 재해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했을 경우인 ‘중대재해’ 정의부터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화학사고 예방팀장은 “관련제도 정비를 통한 관리감독 강화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 기업들의 실질적인 비상조치 훈련이 거의 없고 기업과 협력사들의 비상조치 매뉴얼에 대한 공유가 미흡한 것이 사고 확대의 주된 이유”라며 “사고 초동대응 훈련 의무화, 협력업체 직원 보호를 위한 정보제공 강화 등 당장 시급한 것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이은 화학물질 누출사고는 인근주민을 불안에 떨게도 만들었다. 인근주민인 김모씨는 “요즘 화학약품 누출 사고가 잇따르면서 산업단지 인근에 살면서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며 “사고가 발생하면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단에서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되더라도 시민 대처 요령 등 제대로 된 홍보를 하지 않아 불안감이 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인터넷 등 언론매체에 배기가스 누출 사고 소식이 올라오면서 사고와 관련해 문의 전화가 온 종일 쇄도했다”면서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방안 등 집중 논의

연이은 화학사고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석유화학업체 대표들이 모여 화학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11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과 안전공단 이사장, 40여개 석유화학회사·정유회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학산업 안전보건리더 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화재·폭발 등 고위험 시설이 많은 석유화학업체의 화학사고 예방활동 상황을 점검하고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기업의 근본적인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회의에서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최근 화학사고가 고위험 작업을 영세한 하청업체에 도급을 주고, 원청이 하청에 대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보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폭발·누출 등의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공장에 대해 반드시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고 취약요인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때까지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의 체계적 관리, 안전수칙준수 풍토 조성 등이 포함된 ‘화학사고 예방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CEO들은 화학사고 예방 결의문을 통해 ▲모든 화학사고의 책임이 CEO에 있음을 인식하고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삼아 본사에 안전전담조직을 두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확대하며 ▲협력업체 근로자의 안전도 적극 확보할 것을 결의했다.

화학물질발생 안전사고 적절한 대비책 필요
한편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사고 발생 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재난, 안전분야 ‘공동피해조사 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예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 재난, 재해 과학기술지원특별위원회의 재난 대비 정책 우선순위 설문조사 결과 재난안전대비 인프라구축(71.0%), 재난안전예측, 대응기술 등 과학기술개발(67.3%), 대피훈련 등 안전교육(25.4%), 재난발생 시 복구, 구호를 위한 인력 양성(23.6%) 순으로 응답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화학사고와 같이 지리적 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재난안전 상황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는 재난안전에 대한 연구와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재난, 안전분야 ‘공동피해조사위원회’ 구성해야

이 같이 화학사고 발생 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난, 안전분야 ‘공동피해조사 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비시피협회는 “재난·안전분야의 미래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재난. 안전 ‘공동피해조사 위원회’를 통해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재난, 안전 정책대안의 마련과 정책의 실질적 변화를 위한 민·간 협력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민·간 협력 체계 전문가 구축을 통한 문제점과 대안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책 토론회 등을 통하여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재난, 안전 ‘공동피해조사 위원회’를 위하여 사무처를 구성하고 각 분야별 실무 위원회 구성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토대로 각 분야별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고 관련법 개정, 제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사회안전학회 김윤호 회장도 “대형사고, 태풍, 재난 등 국가 위기관리 상황에서 재난정보의 중요성은 매우 크지만 관련 기관의 경우 재난정보제공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문제” 라며 “각 지역의 공공기관의 재난관리 역할증대와 필요시 공동피해조사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기업 안전사고 일지>

▶ 2012년
9월 27일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사고

▶ 2013년
1월 12일  상주 웅진폴리실리콘 염산 누출사고
1월 15일  청주 산단LCD가공공장 불산 누출사고
1월 28일  화성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
1월 31일  용인 삼성전자 이소프로필알콜 누출사고
3월 02일  구미 LG실트론 불산혼합액 누출사고
3월 05일  구미 구미케미칼 염소가스 누출사고
3월 14일  여수 대림산업 화학공장 폭발사고
3월 22일  포스코 제1파이넥스 공장 화재사고
3월 27일  포스코 제강공장 크레인 운전원 안전사고
3월 28일  SK하이닉스 청주 공장 감광액 누출 사고
4월 14일  삼성정밀화학 울산 공장 염소가스 누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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