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견뎌온 숭례문이 지난 2월10일 화재로 단 몇 시간만에 잿더미로 변한데 대해 예고된 재앙이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600년 역사가 무너지면서 2월 11일은 대한민국 문화재 ‘국치일’이라는 오명과 함께 그 충격과 슬픔은 분노로 이어져 국민의 마음도 ‘숯덩이’가 됐다. 국보 1호가 불타고 붕괴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목재 문화재에 대한 소방시설 미흡도 도마 위에 올랐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재 관리에 대한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데는 평범한 우리 이웃에 의해 저질러진 인란(隣亂)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물론 병자호란을 꿋꿋이 버텨내고 한국전쟁마저도 이겨낸 숭례문이 맥없이 무너진 허탈함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며 기본적 위기관리 대응시스템 부재도 한 몫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남대문 지붕에서 내려다보며 세상을 지켜왔던 ‘어처구니(궁궐 건물이나 문루의 기와 지붕위에 한 줄로 늘어놓은 사람이나 동물모양의 흙 인형)’들이 불에 타 버렸으니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어진 격이다. 불이 발생한지 5분 만에 소방관들이 속속 도착, 소방차 90여대와 소방대원 300여명이 동원돼 불을 끄기 시작했지만 3시간 동안 진화돼지 못했다. 지붕이 일반 지붕이 아닌 특수기와인데다 한식구조 특성상 어려웠다는 소방관계자의 말을 접하고 한마디로 어떻게 불을 꺼야 하는지 몰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숭례문 지붕은 서까래를 올려 빈틈이 없도록 그 위에 개판을 촘촘히 깔았으며 중간에 적심으로 둘러 진흙을 덮은 뒤 기와를 올렸기에 기와와 진흙을 걷어 불씨를 꺼야 했다. 특수기와를 뚫는 방법은 분명히 있었고 깨서 집어 뜯어내면 된다는 전문가 의견이지만 진화가 어려워지면서 불길은 처마틈새로 삐져나왔다. 뒤늦게 지붕을 걷어내려 했지만 실패, 결국 5시간 만에 2층 누각에 이어 1층 누각까지 붕괴됐다. 참사가 아닌 방화에 의한 인재였다.

숭례문의 붕괴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했던 수많은 목소리를 무시한 결과라는 점에 있다. 화재현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깝게 지켜보던 시민들은 물론 TV 화면을 통해 속히 진화되기만을 바랐던 국민들의 바람을 숯덩이로 바꿔놓은 채 숭례문 지붕과 함께 ‘쿵!’하고 주저앉았다. 남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숭례문의 붕괴는 한국인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뜨리는 참극이다.

숭례문은 국보1호로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배달민족과 애환을 함께 하며 국난을 극복해온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숭례문에 조사를 받치고 조화를 올리는 것으로 이번 참혹을 이겨내려 하지만 내일 또다시 어떤 인재가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 속에 각종 재앙에 대비한 매뉴얼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가 위기관리능력 낙제점

	문화유산연대는 2월 11일이 대한민국 국치일이라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6년 숭례문이 국민에 개방하는 행사를 치렀지만 안전에 대한 대책은 도외시 됐다. 문화재 관리실태가 부실 운영됐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낙산사 화재 이후 중요목재문화재에 대한 방재시설에 나섰지만 문화재청이 일시에 예산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40여 점의 목재 문화재 가운데 겨우 4군데만 문화방재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문화재청의 100페이지 분량에 해당하는 매뉴얼은 화재감식시설 유무, 작동유무만 파악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숭례문이 불에 타 붕괴되자 여기저기 천태만상이 연출되고 있다. 문화재관리청과 소방방재청 및 서울시 중구 등 해당 관청들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고, 언론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며 속죄양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 화재는 우리나라 위기관리능력이 ‘F학점’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예산 중 방재사업에만 몰아줄 수 없다는 입장과 문화재에 못을 박는 자체만으로도 문화재 훼손이라는 이유로 소방방재시설을 꺼려왔다는 후문이 들리고 있다.

	화재현장에 조화를 바치며 절을 올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방화(放火)이든 실화(失火)이든) 불은 날 수 있고 설령 화재 발생 시 초기 진화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임에도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늘 떠오른 단어는 사후약방,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는다.

이어령(이화여대 석좌교수) 교수는 “살아계실 때 부모님 은공 모르다 돌아가셨을 때서야 불효자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과 같다”며 “숭례문 앞에 와서 눈물 흘리는 애도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불사조처럼 살아나 또 하나의 창조를 기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피력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애도물결
이번 숭례문 화재뿐 아니라 문화재가 소실될 때마다 정부와 각 정당은 철저한 관리를 지적했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록 고층건물 그림자에 가려 있어도 600살 나이답게 주변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압도하는 당당함으로 버텨왔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내 한가운데에서, 인적이 끊어진 새벽이 아닌 초저녁 시간에 숯덩이로 변해버린 모습에 ‘경비원이 없었다, 서울시 잘못이다, 현 정부의 잘못이다, 당시 시장이던 이명박 당선인 탓이다’등 질타 성 발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의 아이콘이었으며 한국인의 자존심이었던 숭례문을 화마(火魔)의 제물로 사라지게 한 사람이 칠순을 앞둔 어르신으로 토지보상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분풀이로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13일 올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1℃의 날씨임에도 불구, 숭례문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의 헌화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숭례문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가림막 설치공사로 인해 출입이 철저하게 원천 봉쇄됐고 이날 기자들의 출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목례라도 하자”며 610년 된 문화재인 국보 1호 숭례문이 허무하게 무너진 사실을 애통해 하는가 하면 숭례문 가림막 설치로 철저하게 통제된 경찰 앞에서 “이런 철통같은 경비를 남대문에 했어야지 왜 우리들에게 하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또 “가림막 부터 치워라. 누가 저걸 저렇게 해놨냐”, “벌써 콘크리트 타설해놓은 건 숭례문 참사 현장을 건설현장으로 보는 인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처사인 만큼 국민들이 숭례문에 애도의 글이라도 달 수 있도록 공개할 것”을 요청 하는 등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계기관의 대응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가림막이 설치된 지난 2월 13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모행렬은 끊잊 않았다.

현재 잡혔다는 방화범에 대한 국민 분노가 하늘높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방화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인 만큼 이를 어떻게 막느냐, 즉 방재(防災)와 진화(鎭火)에 대한 우리의 기본이 갖추어져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은 허탈하고 부끄럽고 허무하고 뒤숭숭하다. 국가의 상징이 숯덩이가 된 사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제2의 숭례문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점검과 대비를 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아까운 문화재를 잃은 슬픔도 있지만 정부의 안일한 문화재 관리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현재 원형 그대로 200억 원을 들여 복원가능하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복병은 늘 숨어있기 마련이다. 훌륭하게 복원한다 하더라도 조상의 숨결, 정신, 얼까지 살려낼 수 없기에 국민들은 더 비통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