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로 인해 태안 지역 주민들이 정신적 스트레스 및 일부 주민의 자살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재난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장애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며, 심리적 안정을 위한 시스템을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는 게 피해자 및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 시설복구와 물질적인 지원을 비롯해 온 국민이 앞장서 자원봉사활동까지 벌이는 등 사후대책에 힘쓰고 있지만 태안주민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감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분노한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까지 잇따랐다.

이번 사태로 태안 주민들은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그 아픔들을 함께한 이웃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은 집단 공유 의식까지 더해 스트레스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처럼 풍수해, 화재 등 각종 재난으로 인한 사상자는 물론 생존자와 유가족 그리고 현장을 지켜 본 목격자, 구조요원까지도 잠재 피해자로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태안 사태와 같은 재난·재해 발생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심리적 불안감 및 스트레스를 위한 심리상담 등 정신적 지원 체계를 시급히 갖춰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포명했다. 이러한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상담 및 치료는 재난의 사후대책 만큼 중요한 부분으로서 최근 여러 사고들의 여파로 그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심리 전문가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심각성 경고
각종 재난이 발생 할 경우 당장 시급한 것은 구호와 시설복구지만, 이와 동시에 필수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조치다. 각종 참사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 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로, 지진·홍수 등 자연재해, 전쟁, 자동차사고, 폭행, 강간, 테러 및 폭동, 화재 등에 의한 사고로 발생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은 개인에 따라 충격 후 바로 나타나거나 수일에서 수년이 지난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충격적인 과거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거나 불면증·분노폭발 등 과민 상태가 지속되거나, 그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회피 또는, 반대로 둔화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알콜이나 약물남용, 자해적 행동과 자살 시도, 직업적 무능력, 대인관계 장애로 까지 나타난다.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사고 2차 후유증의 가장 큰 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는 사고 직후 아무런 이상이 없어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사람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정신장애”라고 그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재난 피해자, 사고 후유증으로 장기간 고통 경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과 같은 심리적 충격에서 오는 위험의 심각성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자들의 대부분은 살아있다는 안도감은 잠시, 사고 이후 악몽에 시달리고 외출을 못하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2003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의 생존자들도 마찬가지.

대구 신암동에 사는 김 모(58)씨의 경우 당시 사고지하철을 겨우 빠져나와 목숨은 구했지만 약 70여일을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며 병원 신세를 졌고, 사고 발생으로부터 꽤 흐른 지금까지도 그는 불, 연기, 어둠만 보거나 경험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되버린다. 각종 재난으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적인 불안감의 결과는 여러 영화에서도 보여주며 그 심각성을 주지시켰다.

	(왼쪽)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오른쪽)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모습.

영화 ‘가을로’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높은 빌딩 사무실의 문이 ‘쾅’ 닫히거나 교통 혼잡으로 버스가 터널에 갇히자 순간 호흡곤란과 식은땀을 흘리며 현장에서 시급히 벗어난다.

계속적인 크나큰 사고들로 인한 피해 규모 및 피해자 수는 늘어가는 추세지만,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관련 대책이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 오랜기간 동안 그 아픔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카톨릭의대의 한 정신과 교수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수차례 각종 재난 사고를 경험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적 안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번 태안사태 역시 인재가 대규모 재앙으로 이어진 만큼 피해 어민들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에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황상태의 태안주민, 정신적 스트레스 극에 달해
최근 기름유출 사고 발생으로 대규모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태안지역 주민들은 두달여가 지난 지금도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격인 이번 사고가 발생 한 이후,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먹고살 걱정에 어두운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민들이 생계활동에 손을 놓은 채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더군다나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나누던 이웃 주민의 연이은 자살사고까지 더해 태안주민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으며, 극한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자살 도미노 사태도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자율신경 중 교감신경이 작동하여 뇌신경은 흥분되며 심장박동과 호흡은 빨라진다.

	한국EAP협회 '재난관리지원센터'는 지난 1월 29일과 2월 4일, 충남 태안앞바다 기름유출사고 현장인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의항리 등 네곳의 주민들을 만나 스트레스 측정검사 및 상담 등 107건의 상담을 실시했다.

이와 관련 한국EAP협회 재난관리지원센터 관계자는 “스트레스 측정 시 교감신경 상태가 20미만이 정상군에 속하는데, 태안 지역 주민들을 검사한 결과 정상군 0.4%, 예방군 0.8%, 위험군 17%, 고위험군 69%의 수치를 나타냈다”며 “사고 이후 두달여가 지난 후에도 69%가 고위험군에 속하는 수치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볼 수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주민들의 심리상태는 대부분 생계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 분노 그리고 상실감 등 정신적인 공황을 겪고 있는 고도의 불안상태로, 화가나고 답답하며 울분과 울화로 가득해 식욕저하, 불면증, 두통 등을 호소하는 등 극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는 상태다. 마을 주민들끼리도 사고 관련 언급을 회피하는 등 서로에게 위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체계적 시스템 갖춘 심리지원 대책 전무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비영리법인 기관인 한국EAP협회 ‘재난관리지원센터’가 대표적이다. 한국EAP협회 재난관리지원센터는 재난관리사업에 보다 기동력 있게 현장을 지원하며 국내 재난관리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 여론을 형성하고자 설립한 것으로, 재난 현장에 ‘재난관리 전문가’를 파견해 피해자의 심리 외상의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고 간호 대책을 마련하는 등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회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의 복귀를 돕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재난시스템은 사전대비보다는 사후복구에 치중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에서도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적 불안감 및 충격을 위한 지원 보다는 물질적인 복구대책에 주력하고 있는 형편이며,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 치료와 같은 지원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특히 재난이 발생 했을 때에는 재난 당사자들 조차도 당장 생계를 위협받다 보니 심리 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EAP협회 김명륜 사무국장은 “그동안 심리치료에 바탕을 둔 민간인 차원의 지원이 있기는 했었지만 체계성을 갖춘 공공 기관지원은 아직까지 전무한 상황”이라며 “이번 태안사고 이후 심리적 안정을 위한 서비스 지원이 시급하다고 느껴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태안 사고와 관련 한국EAP협회는 재난관리지원센터의 재난관리전문가들이 피해 지역을 방문, 물질적·심리적 피해로 위기상황에 처한 태안 군민들의 위기상황스트레스 완화, 효과적인 대처관리 방법 등 ‘심리적 ·정신적 피해 지원과 지지’를 위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심리상담 받은 태안 주민들, 기대 이상의 ‘호응’
심리 상담 서비스를 받은 피해 지역 주민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이번 태안지역 심리상담은 몇 번의 거절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주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에 반가워했다.

	한국EAP협회 김명륜 사무국장은 "재난충격의 후유증으로 자살, 폭력, 분노, 상실감 등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정신건강 측면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며 "정부기관도 재난ㆍ재해 시 '시설복구'에만 치중했던 사후대책과 함께 '심리적 복구'의 관점에서 피해복구의 일환으로 피해자나 직간접 재난 관련자들의 심리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항리에서 상담을 받은 이병래(66)씨는 “어디가서 말을 할 수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 답답한 마음뿐이었는데 이렇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니 속도 편하고 마음도 풀린다”면서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울분을 표출했다. 만리포에 거주하는 박원옥(62)씨 또한 “사고가 일어나고 지금까지 계속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속에 메스꺼워 힘들었는데, 이렇게 털어놓고보니 속이 깨끗해진것 같아 시원하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상담을 담당했던 한 재난관리전문가는 “처음 태안지역 주민들의 심리 상태를 체크했을 때에는 스트레스 수치가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도 반응이 없었고 그저 눈물만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상담을 받은 후에는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계속적인 상담을 원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상담 및 치료는 재난 피해자들에게 생계비 및 복구비 등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대신 더 이상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활동으로 피해자들에게 조금의 희망이라도 심어줄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방에선 담음이나 어혈이 외상 후 스트레스 ‘원인’
각종 재난 및 사고들을 경험하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심리적 피해자들은 이처럼 상담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극단적인 상황도 불사 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는 시기인만큼 정신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의가족한의원 김성수 박사

관련 기관 및 단체의 지원을 받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재난·재해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 할 수 있다. 가족들은 섣불리 충고하기 보다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무서운 경험을 자꾸 이야기하면 더 흥분이 될 것 같아 이야기 하는 것을 피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피해자가 말하고 싶어 하면 들어주는 것이 그 때 느꼈던 두려움 등을 잊는데 더 도움이 된다. 물론 장애가 장기간 지속되고 심각한 상태라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한방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동의가족한의원 김성수 한의학박사는 “한방 정신과에서는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의 원인을 담음이나 어혈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크게 놀란 일이 있으면 심(心)이 상하면서 혈기가 허해지고 담음이 발생하여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주 놀라게 되며 불면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럴때에 각 상태에 맞게 어혈 또는 담음 침과 한약을 복용하면 위의 증상들이 사라지는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피해자 심리 전문적 관리 위한 시스템 시급
자연재해나 인재에 대한 위기상황에서 환경, 시설, 시스템 복구등은 원만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물질적인 피해만큼이나 중요한 사람 피해에 대한 지원 시스템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 볼 수 있다.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재난들부터 이번 태안사고까지 우리 모두는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가져오는 위험성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에서도 중요성을 인식,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시설피해 복구지원과 함께 이재민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재난피해자 심리지원 정보시스템을 올 9월까지 구축하고 국민들에게 본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한국EAP협회 김명륜 사무국장은 “향후에는 효율적이고 완성도 높은 심리 상담을 위한 심리지원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민간단체와 정부기관의 상호 협력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는 재난 피해자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희망을 찾아 삶을 일구며 사고 충격의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난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이다.

그래야만 주위를 둘러볼 수 있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으며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니 만큼 시설복구와 함께 심리상태를 안정화하는 대책에도 귀 기울여 극단적 행동인 ‘자살’로 이어지는 행동을 사전 예방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심사숙고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