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7조 제2항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가재난관리표준’도 ‘기업재난관리표준’도 없다. 이렇다보니 당연히 ‘국가재난관리표준화’ 관련 규정도 ‘기업재난관리표준화’ 관련 규정도 없다.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은 자국 ‘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해 운영 중이다. 또 이들 방재선진국의 경우는 자국 표준을 토대로 ‘국제재난관리표준(ISO/TC223 : Societal Security)’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재난관리표준’ 제정을 위한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ISO/TC223 제4차 정기총회에서 한국대표인 한국BCP협회 정영환 부회장이 제5차 정기총회 한국유치를 희망, 지난 5월에 ISO/TC223 총회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렸다. 오는 11월10일부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제6차 정기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12월1일 ISO/TC223에서 개발한 첫 번째 국제재난관리표준으로 ‘ISO/PAS22399’가 이미 출간됐고 이번 제6차 총회에서 ‘국제재난관리표준’인 ‘ISO22399’로 제정될 예정이다. 이 국제표준이 제정되면 지식경제부에서는 ‘KS(Korea Standard)’를 ‘ISO22399’ 앞에 붙여 우리나라 국가표준(KS/ISO22399)으로 고시하게 된다. 이미 지식경제부에서는 ‘ISO22399’의 한글화 버전을 만들고 있고 이 작업도 올해 말까지 끝낼 예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월17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국가재난관리표준’과 ‘기업재난관리표준’을 각각 새로 만들고 ‘국가재난관리표준화’와 ‘기업재난관리표준화’ 관련 근거 규정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 입법예고안에는 ‘국제재난관리표준’과 ‘국제재난관리표준화’에 반하는 규정들이 많아 관련 부처들의 심한 반발을 사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어떻게 ‘재난관리표준’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진급 진단한다.

# 사례 1 “세계적 표준체계와 관리체계 역행 말자” # 사례 2 “행정안전부는 ‘잘못 꽨 첫 단추’ 인정하자” # 사례 3 “재난관리표준은 ‘국가’와 ‘기업’ 나눌 수 없다” # 사례 4 “ISO 재난관리표준 제정에 적극 동참하자” # 사례 5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개정안은 ‘꽁수’”  # 사례 6 “범 부처 담당자들의 적극적 참여 유도해야”  # 사례 7 “‘통합적재난안전관리체계’ 충분한 검토 필수” # 사례 8 “미래에는 국제재난관리표준을 통하지 않고는 재난정보를 공유할 수 없고 정보를 확보하더라도 해석할 수 없다.” # 사례 9 스웨덴 비상관리사무국의 상임고문이며 ISO/TC223 의장인 크리스터 쿰린(Krister Kumlin)은 “표준화된 (의사소통)채널은 위기관리에 있어서의 대응 시 리드타임을 줄일 수 있고 유관부서 협력을 간소화시켜 역량집중에 효과적이고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라며 “앞으로 국가간 그리고 글로벌회사, 감독기구, 기관 간에 더 많은 정보와 데이터 교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일부 개정함에 있어 그 취지와 주요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행정절차법 제41조’의 규정에 의해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2008년 10월17일 행정안전부장관”이라며 “개정법률(안)에 의견이 있는 기관, 단체 또는 개인은 2008년 11월5일까지 의견서를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입법예고 했다. 이 입법예고(행정안전부 공고번호 제2008-185호)는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만 지난 10월16일 오후 늦게 게재됐으나 지난 10월22일 오후 5시40분 현재 삭제돼 있는 것(홈페이지 캡처 사진 참고)으로 확인됐다.

또 이 입법예고는 지난 10월16일자와 10월17일자 관보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당연히 관보에 게재된 입법예고만을 확인해 다시 게재하는 법제처 홈페이지 입법예고 현황(홈페이지 캡처 사진 참고)에도 빠져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취지와 주요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하는 행정안전부의 노력이 아쉬움을 넘어 ‘의혹’까지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통합적재난안전관리체계 근거 마련 위함
행정안전부는 이 법의 개정취지가 “통합적재난안전관리체계의 구축과 신종·복합 재난의 발생 등 재난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제기돼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효율적인 재난관리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밝힌 이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대형재난이 발생할 경우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를 설치해 과학적, 객관적 원인분석 및 예방, 대비, 대응, 복구 등 재난관리 체계 전반의 사후 분석, 평가를 통해 재난정책의 환류기능을 강화(안 제10조의2)하고 ▲각종 개별법에 의한 안전관리 업무 중 계획, 점검, 검사, 교육, 훈련, 평가, 기준 등의 유사, 중복업무에 대해 기관 간 조정이 필요한 경우 중앙본부장이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함(안 제15조의2)이다. 또 ▲그동안 소방방재청장의 훈령으로 중앙안전점검단을 운영해 왔으나 제도적 근거 미비로 지속적인 활동에 애로가 있어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것(안 제20조의2)이고 ▲재난상황보고시스템을 개선해 재난관리책임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및 중앙행정기관 간 상황을 공유토록 함(안 제20조)이다.

특히 ▲재난관리체계 등에 대해 중앙행정기관과 시·도가 시·군·구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재난관리에 대한 기관별 자율과 책임행정을 강화하고자 함(안 제29조)이고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재난홍보, 교육계획 수립을 의무화해 해당 주민 및 언론에 대해 신속한 정보제공으로 효율적인 재난대응이 이뤄지도록 함(안 제34조)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재난 중 국가가 관리할 필요가 있는 재난유형에 대해 국가관리대상 재난유형으로 확정·관리(안 제35조)하고 ▲모든 유형의 재난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재난관리 표준화에 대한 근거를 마련함(제36조부터 38조)이다.

개정안 입법까지 난항 예고
이 법률 개정안이 입법예고되기 전에 행정안전부는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모든 정부 부처에 검토의견 공문을 지난 9월 말 보냈다. 일부 정부 부처는 이 법률 개정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10월 초 행정안전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부처 한 공무원은 “이 법률 개정안을 보면 행정안전부가 ‘재난관리표준’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재난관리표준과 재난관리표준화 규정을 만들 것이니 믿고 무조건 동의하라는 것”이라며 “관련 규정들이 상식 이하인 초등학생 수준의 개정안”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 공무원은 또 “도로, 철도, 해상, 항공, 지하철, 환경, 화학, 방사능, 전력, 원유, 보건, 전염병, 가축, 금융전산 등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고 이들 분야의 사고 분석과 평가 작업을 해오고 있는 부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행정안전부 직원들이 재난조사평가 업무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위원들 위촉과 관련해 협의가 있었으나 억지 주장이 많아 조율되지 못했는데 지난 9월30일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새정부 국정과제인 “통합적 재난관리체계 구축” 위한 협의회)’를 개최하고 위원들까지 확정, 위촉을 무리하게 강행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입법예고 현황(10월22일 5시 40분 현재)

그는 특히 “이번 법률개정안에도 문제가 많다”며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위촉’ 강행과 같은 형태로 행정안전부가 원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법률 개정안’을 밀어붙인다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더 나아가 “입법예고가 법률로 통과되기 위해서는 모든 부처의 차관들이 참여하는 차관회의 등을 거쳐야 하는 데 한 부처만 반대해도 법률 개정안을 통과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 한 공무원은 “이 법률 개정안에 대해 관계부처 담당자들이 검토의견을 지난 10월 초 보내왔다”며 “검토의견 접수기한이 있지만 기한을 넘긴 부처의 의견까지 포함해 입법예고 전에 조율작업을 끝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부처의 담당 공무원들은 “재난포커스 기자의 전화를 받고 이 법률개정안이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만 입법예고(지난 10월17일) 된 사실을 알았다”며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이 법률 개정안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면 관계 부처 공무원들에게 더욱 이해와 설득을 구하고 입법예고되기 전에도 관련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지적했다.

재난관리 ‘표준과 표준화’ 불만 커
관련 부처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표준과 표준화 관련 조항은 <제3조(정의) 9>, <제3조(정의) 10>, <제36조(국가재난관리표준의 제정 등)①, ②, ③, ④, ⑤>, <제37조(재난관리책임기관의 표준화 실태 점검·평가 등) ①, ②, ③>, <제38조(재난관리표준화 지원) ① 1, 2, 3, 4, 5, 6>, <제74조(재난의 표준관리 등)>, <제83조(권한의 위임 및 위탁) ③ 1, 2>, <부칙 제1조(다른 법령의 개정) ①, ②>, <부칙 제2조(시행일) ①, ②> 등이다.

	법제처 홈페이지 입법예고 현황(10월22일 5시 40분 현재)

제3조(정의) 제9호와 제10호의 경우 신설항목이다. 제9조의 경우 “국가재난관리표준”이라 함은 재난의 유형에 관계없이 각종 재난업무에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재난관리의 전 과정을 통일적으로 단순, 체계화 한 것으로 제36조의 규정에 의해 중앙본부장이 고시한 것을 말한다.로 돼 있다. 또 제10호는 “재난관리표준화”라 함은 제9호의 국가재난관리표준이 각 기관의 업무에 적용될 수 있도록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로 돼 있다.

제9호와 제10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36조의 규정에 의해 중앙본부장이 고시한 것을 말한다’는 문구이다. 관계 부처 한 공무원은 “‘제36조의 규정에 의해 중앙본부장이 고시하는 것을 말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대신 ‘국제표준 또는 국가표준과 부합하는 KS표준을 말한다’로 수정해야 한다”며 “제36조(국가재난관리표준의 제정 등)와 제37조(재난관리책임기관의 표준화 실태 점검·평가 등) 전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안 제36조 전체 삭제해야
개정안 제36조(국가재난관리표준의 제정 등) ①,②,③,④,⑤ 내용과 제37조(재난관리책임기관의 표준화 실태 점검·평가 등)의 요지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재난관리기술위원회(ISO/TC223 : Societal Security)에서 지난해 12월1일 국제재난관리표준(ISO/PAS22399 Societal Security - Guideline for incident preparedness and operational continuity management)으로 제정, 출간된 첫 번째 성과물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우리나라만의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고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11월10일부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ISO/TC223 제6차 정기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12월1일 ISO/TC223에서 개발한 첫 번째 국제재난관리표준으로 ‘ISO/PAS22399’가 이미 출간됐고 이번 제6차 총회에서 ‘국제재난관리표준’인 ‘ISO22399’로 제정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 한 담당 공무원은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도 자체 국가재난관리표준을 갖고 있는 데 주권국가인 우리나라도 자체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고 운용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하루빨리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공무원의 이 같은 설명에 반대 입장인 다른 부처 한 담당 공무원은 “국제재난관리표준은 이미 제정돼 있기 때문에 국가재난관리표준은 국제재난관리표준을 따라야 하고 독자적으로 국가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상 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 협정에 위반하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목표인 신발전체계 구축 달성을 위한 실천전략 중 글로벌스탠다드(국재표준)와 내셔널스탠다드(국가표준)의 조화에도 어긋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ISO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4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모여서 재난관리 국제표준을 개발하고 있다”며 “서남아시아 쓰나미 발생 후 분석보고서에 ‘국제구호에서의 국가간·조직간 효율적 협력’, ‘재난정보 전달 및 경보체계’, ‘재난관리 요소기술의 개발’ 등의 지적에 따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자는 취지에서 국제재난관리표준이 제정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난관리표준, 국가간 도울 방법 찾는 것
WTO/TBT란 기술규정, 표준 및 적합성 평가절차 등이 국가간의 교역에 불필요한 장애요인 발생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WTO/TBT협정의 목적은 새로운 기술규정을 도입할 때 관련 국제표준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제표준을 사용토록 하고 있어 국가표준과 국제표준의 일치와 조화를 통해 국가간 표준의 차이로 인한 불필요한 무역장벽을 해소하고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표준기본법 제20조 제2항에는 ‘정부는 국가표준을 제정할 때에는 국가표준이 있는 경우 가급적 이를 반영해야하며 새로운 표준을 제정한 때에는 제정 내용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국가표준기본법 제20조 제3항에는 ‘지식경제부장관은 관련 법률 및 규정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국가표준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며 신속한 대 국민 정보제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행정안전부의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의 제36조(국가재난관리표준의 제정 등) 내용에 반대 입장인 한 공무원은 “국제표준의 저작권은 ISO본부와 각 나라의 회원기구(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 있으므로 재난관리 국제표준은 KS표준으로 제정, 관리돼야 한다”며 “표준의 중복을 방지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표준은 통합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준화 실행도 ISO 방법 따르자
제38조(재난관리표준화 지원)의 요지는 국가재난관리표준에 따라 ‘재난관리표준화’를 촉진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종류의 표준이 제정되면 표준에 따른 표준화 지원과 촉진 업무는 해당 관련 부처에서 하도록 돼 있다. 표준화 촉진을 위한 업무는 다양하다. 개정안 제38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표준화에 따른 조사, 연구, 개발, 진흥, 지도, 교육, 수집, 보급 등이 모두 표준화 지원과 촉진에 포함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 또한 국제표준화기구(ISO) 각종 가이드와 표준들을 만족하는 인증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실제 재난관리기술위원회(ISO/TC223 : Societal Security)에서는 국제재난관리표준화 활동에 있어 인증제도 관련 규격과 정책을 다루는 ISO/CASCO(적합성평가위원회)의 소관 규격과 가이드를 검토하고 있다. SO/IEC 가이드 2에서 정의하는 표준(Standards)이란 ‘합의에 의해 제정되고 인정된 기관에 의해 승인됐으며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적의 질서를 확립할 목적으로 공통적이고 반복적인 사항을 이한 규정’이다. 또 표준화(Standardization)이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실제 또는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적의 질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을 확립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이다.

행정안전부 개정안 중 제38조 부분에 있어서도 ISO 적합성평가위원회의 소관규격과 가이드를 따르자고 주장하는 한 공무원은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은 우리나라만을 위한 자체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고 표준화 활동도 하겠다고 하는 데 아무리 천재라고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의 표준과 표준화 내용 중 부분 채용하거나 모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ISO 회원국인데 떳떳하게 ISO/TC223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드리면 되는 데 행정안전부가 너무 세계적 표준제정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미 잘 만들어진 국제재난관리표준을 도입하고 ISO 적합성평가위원회의 소관규격과 가이드를 활용하면 좀 더 좋고 손쉽게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국가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도로, 철도, 해상, 항공, 지하철, 환경, 화학, 방사능, 전력, 원유, 보건, 전염병, 가축, 금융전산 등의 분야’와 관련해 재난관리를 담당했던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금융감독원 등 정부부처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전문성 의문
행정안전부가 지난 9월30일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를 개최하고 재난유형별 전문기관·단체의 미간 전문가 21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는 데 이 날 위촉된 전문가들이 담당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정부 부처 한 공무원은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에서 이 협의회와 관련해 협의해 왔으나 억지가 많아 협의자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로, 철도, 해상, 항공, 지하철, 환경, 화학, 방사능, 전력, 원유, 보건, 전염병, 가축, 금융전산 등 분야의 전문가라는 분들이 위촉된 것”이라며 “실제 도로, 철도, 행상, 항공, 방사능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조사평가 업무를 해본 분들은 이날 위촉된 분들 외에 상당 수준의 전문가들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9월30일 정부중앙청사 12층 회의실에서 김진항 재난안전실장 주재로 위촉위원 21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위원 위촉장 전수 및 협약서 교환’,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설치·운영방안 보고’, ‘평가협의회 회장 및 분과협의회장 추천’ 등의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를 개최했다.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설치·운영 근거는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설치·운영 규정(2008년 6월16일 공포)이다.

이 협의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회에 설치됐고 조사범위는 화재, 붕괴, 폭발 등 인적재난과 에너지, 통신 등 국가 기반체계 마비와 전염병 확산 등의 사회적 재난이다. 이 협의회 관련 규정은 이번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 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 제10조(중앙위원회 기능)에도 나타난다.

개정안에 신설된 제10조의2(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구성·운영 등) ①에는 ‘중앙위원회의 위원장은 재난의 발생원인과 재난 발생시 예방, 대비, 대응, 복구과정 등에 대한 조사, 분석, 평가 등을 위해 재난 관련 분야 전문기관이나 단체 등이 참여하는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이하 “평가가협의회”라 한다)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제10조의2 ②에는 ‘제1항에 따른 평가협의회는 재난조사, 분석, 평가에 필요한 경우 재난관리책인기관의 장에게 관련 공무원의 파견 및 자료제출 등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제10조의2 ③에는 ‘제1항에 다른 평가협의회의 구성·기능 및 운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특히 이 개정안에 신설된 부칙 제2조(시행일 등) ②에는 ‘이 법이 시행당시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설치·운영규정에 의하여 구성된 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는 이법에 의하여 구성된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 개정안에 신설된 제10조의2(중앙재난조사평가협의회 구성·운영 등) ①, ②, ③의 조항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담을 내용들까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에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재난관리표준은 ‘국가’와 ‘기업’ 분리 불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 자체가 관계 부처 공무원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세계적인 재난관리표준 제정 정신도 모르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또 행정안전부가 밝힌 일부 개정안의 개정취지에도 반한다는 입장이 많다. 이 개정안의 개정 취지는 ‘신종·복합 재난의 발생 등 재난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ISO/TC223은 국제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하는 데 있어 전세계적으로 ‘신종·복합 재난의 발생 등 재난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국가간, 단체간 공조와 민간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 국가(정부, 공공기관 등)와 민간(기업 등)을 나누지 않고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에서 입법예고한 이번 개정안에는 ‘국가’와 ‘민간’을 나눠 ‘재난관리표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부칙 제1조(다른 법령의 개정) ①을 신설해 ‘재해경감을 위한 기업의 자율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고 돼 있고 ‘제2조 제4호, 제4호 제목, 제2장 제목, 제5조 제목 및 제1항 내지 제4항, 제6조 제목 및 제1항, 제3항, 제11조 제1항, 제27조 제1항 중 “재난관리표준”을 “기업재난관리표준”으로 한다’고 돼 있다. 이는 ‘재해경감을 위한 기업의 자율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를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을 만드는 수준이다.

한 재난관리 전문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오는 11월 10일 개최될 예정인 ISO/TC223 제6차 총회에서 ‘ISO22399’가 통과되면 지식경제부에서는 KS를 앞에 붙여 우리나라 표준으로 공고할 예정”이라며 “국제재난관리표준이 ‘국가’와 ‘민간’을 나누지 않고 있는 데 우리나라만 독자적으로 ‘국가’와 ‘민간’을 나눠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드는 것은 국제적 ‘고아’를 자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행정안전부에서 입법예고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 자체에는 모순이 많고 관계 부처간 첨예한 입장 차가 있는 만큼 법률로 제정되지 못할 것으로 확신 한다”며 “ISO에 떳떳하게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왜 국제 공조에 반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난관리표준, ‘국제공조정신’ 살려야
또 다른 재난관리 분야 한 전문가는 “국제재난관리표준 제정이 반하는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재난관리표준을 만든다는 것은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 ISO/TC223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문가들의 말에는 귀를 닫고 독자적인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부 교수의 주장에만 귀를 열고 있는 형평성을 잃은 처사로 보인다”며 “독자적인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모 교수는 ISO/TC223 총회에 참석해 다양한 자료를 받아 저작권을 무시하고 우리나라에 맞는 독자적인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드는 것으로 국제공조정신보다는 개인의 욕심을 드러낸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ISO/TC223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전세계 40여개국 150여명의 전문가들은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의 재난관리표준 중 가장 우수하다고 합의한 부분들을 모으고 연구해 표준으로 만들고 있다. 재난관리 분야 모 교수는 “독자적인 우리 재난관리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 교수는 ISO/TC223 총회에 참석해 한마디의 의견도 개진하지 않고서 국제 합의해 의해 도출된 표준을 갖고 국내 표준으로 따로 제정한다는 하는 데 국가표준으로 제정되면 향후 발주될 수많은 연구용역과제들을 독식하겠다는 것으로 관계 공무원을 문책해야 한다”며 “오는 11월10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 예정인 ISO/TC223 제6차 총회에도 우리나라 독자적인 국가표준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모 교수의 참석 자체를 불허하는 공문을 ISO 측에 이미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난포커스 이번호(2008년 11월호)에는 ‘올바른 재난관리표준 제정을 위한 긴급제언’을 다뤘고 다음호(2008년 12월호)에 ISO/TC223 제6차 정기총회 결과와 입법예고 기한이 오는 11월5일까지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집중분석을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