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7일은 태안 앞바다를 비롯한 서해안 일대가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뒤덮인 최악의 해양사고가 발생한 1주년이다. 총 1만2547kℓ의 원유가 유출됐는데 지난 1995년 발생했던 씨프린스호 사건보다 2배가 훨씬 넘는 규모일 뿐만 아니라 사고 후 초기대응에 신속하지 못하는 등 미흡한 대처로 피해가 더욱 컸다. 이 같은 재난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뿐 아니라 이번 사고의 대응에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위기관리 대응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11월1일 원광대학교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지역주민의 위험관리 방안’이라는 주제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세미나에서 진행된 연구를 통해 현시점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의 진행상황과 남아있는 과제들을 짚어본다.

지난 11월1일 원광대학교에서 열린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지역주민의 위험관리 방안’에서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부장 정기성 교수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알려진 독일의 사회학자 ‘벡(Beck)’이 최근 1년 사이에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2007.12.7)와 숭례문 화재(2008.2.10) 등을 “압축적인 근대화 속에 담긴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하며 한국을 ‘아주 특별한’ 위험사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삼성중공업ㆍ현대오일뱅크…안전 불감증
지난해 12월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삼성중공업의 예인선 T-5호로 끌고 가던 해상크레인 삼성1호가 정박 중이던 홍콩 선적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의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로 판명됐고 정부의 초동대응 미흡으로 인한 참사로 남게 됐다. 이미 기상악화가 예보된 상황이었고 삼성중공업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계속된 관제실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고 후에는 ‘무선을 받은 적이 없다’는 등의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또 현대오일뱅크의 유류탱크로 유조선을 운전해 갈 선장을 기다리던 단일선체 유조선인 홍콩선적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어민들이 생계활동을 하던 어장에 정박 중이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역시 해양청으로부터 충돌위험이 있으니 안전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사고 당시까지 닻을 올리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분명 삼성과 현대가 안전수칙을 준수했거나 해양청의 경고를 들었더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인재였음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주목된 것은 허베이 스피르트호가 단일선체의 유조선이라는 점이었다. 단일선체의 유조선은 선박 충돌사고에 따른 해양오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등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자국영해 내에서 단일선체 유조선의 운항을 줄이기 시작했고 2011년 이후에는 금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단일선체 유조선의 가격이 하락했고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오히려 초대형 단일선체 유조선의 이용을 늘리고 있다. 또 이번 사고의 피해가 컸던 것은 정부의 초동대응이 실패한 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방제청이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후 3시간 35분이 지나서였고 300톤급의 방제정은 대형재난에 제구실을 하기 어려웠다. 오일펜스는 높은 파도로 적절하게 방어하지 못했고 기름은 빠르게 바다 곳곳으로 확산돼갔다. 정부는 유출된 기름띠가 육지까지 오는데 36시간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3시간 만에 학암포와 천리포 해변으로 기름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유조선의 구멍을 48시간이나 그대로 둬 흘러나오는 기름을 막지 못했고 사고 발생 후 사나흘 만에 방제 물품은 거의 소진됐다.

복잡한 갈등구조 발생
이번 재난사고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피해지역이 광범위하고 피해에 따른 파생적 영향이 큰 까닭에 다양한 종류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사고원인자 역시 삼성을 중심으로 허베이스피리트 선박회사 등으로 복잡하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갈등구조도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은 말했다. 지난 11월1일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지역주민의 위험관리 방안’ 세미나에서 박태순 소장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 관련 갈등분석과 평가’를 발표했다.

박태순 소장에 따르면 사고발생 초기에는 사고 발생의 원인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다. 주로 피해자인 지역주민이 시민단체와 결합해 가해자인 삼성, 유조선 측과 대립관계를 띠었고 사고발생 원인 규명을 둘러싼 재판이 시작했다. 6월 1심 판결이 났지만 불복해 항소로 이어졌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월 이후에는 체계적인 보상과 회복을 위해 법제화 논의가 시작됐고 특별법의 내용을 둘러싼 정당, 지역주민, 정부(중앙정부, 지자체)간 갈등(1-2월)이 발생했다.

	사진1.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부장 정기성 교수 사진2.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

이는 이후 시행령 제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발전(특별법 제정 이후 -6월 초까지)하기도 했다. 또 조직 통합을 위한 노력과 갈등이 시작되기도 했다.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대책위가 통일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조직간 갈등이 심화,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2월 - 현재). 6월 이후에 생계에 대한 압박감이 증대되면서 방제비 관련 갈등이 부상했다. 주민의 생계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6월 이후 미지급 방제비용의 완전한 보전을 요구하며 주민, 지자체, 방제업체, 중앙정부간에 갈등(6월 - 현재)이 발생한 것이다. 사고발생에서 현재까지 보상관련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보상의 조건과 방법, 범위 등에 대한 논쟁이 사건발생 초기부터 진행됐고 정부와 IOPC 등에서 피해액 추정 결과가 도출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보상 대상과 추정액을 놓고 지역주민과 정부, IOPC간에 갈등이 진행되고 있다.

잠재된 지역 내 갈등의 소지 많아
세미나에서 참석한 전문가들은 비록 현재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재 수면 밑에서 해결되지 않을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갈등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발표를 했던 박태순 소장은 지역사회 발전 방향에 관해 갈등의 소지가 여전히 다분하며 현재 주민간, 지역간 불신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어 새로운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섰던 전국재해구호협회 이은애 팀장은 자연도 자기복원 능력이 중요하듯이 갈등도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이 이뤄지고 나면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일정기간이 지나고 해소될 것이지만 보상 전에 그 방안이나 방법론이 제안되지 않아 지역 내의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또 보상 후 보상의 액수에 따라 지역 내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앞으로 보상 후의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방폐장 문제의 경우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음모론이 제기 되면서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다며 어떻게 원활하게 보상의 정보공개를 이뤄야 할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지속적 관찰과 지원 가능한 시스템을 찾아야 하고 이는 지역시민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지역시민단체가 환경뿐 아니라 지역 내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자로 나섰던 한남대학교 행정학과 김겸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재난 피해를 입었을 때 지역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며 “해법을 외부에서 찾고 있는데 그보다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간의 갈등 문제는 지역 기반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외부에서 보기엔 풍선효과와 같이 한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다른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며 “사실은 새로운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역 내부에서 잠재돼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부에서는 지역 내 복구 원동력을 지원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방제활동으로 인한 2차 오염 우려

	사진1.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 국장 사진2. 인천대학교 행정학과 안철현 교수

기름유출사고로 가장 직접적이며 큰 피해를 당한것은 자연이다. 세미나에서 서산태안환경연합 이평주 국장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생태계파괴와 관리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이평주 국장은 현재 방제활동에 따른 2차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평주 국장은 “90˚C 이상, 2600파스칼의 고온고압 분사기를 사용해 돌의 기름을 제거하는데 이정도면 사실 돌멩이가 깨지는 위력”이라며 “당연히 돌멩이에 붙어있던 미생물들이 다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방제활동을 위해 돌을 삶기도 했다”며 “바다생물의 경우 1℃의 차이가 사람의 10℃ 차이와 같은데 생태계를 위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모래지역의 경우에는 갈아엎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는 당분간 살아있는 생물이 하나도 없는 삭막한 모래사장을 만들게 돼 생태계 파괴를 가져온다. 바다에 떠다니는 기름을 작은 기름물방울로 쪼개 물속에 흩어지게 하는 화학약품인 유분산처리제의 사용으로 인한 2차 오염의 우려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름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다에 오염물질이 그대로 남아있어 다시 해안으로 밀려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들어온 기름은 닦아내지만 그 후에 남은 것들은 아스팔트화된다. 완전히 아스팔트화되면 신경 쓸 것이 없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여름에 기온이 올라가면 다시 흘러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평주 국장은 “10월 말 국토해양부는 중간보고에서 해양부분의 기름이 많이 제거됐다고 밝혔다”며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압력수 등을 사용해 표면적으로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는 뻘지역 등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설명했다. 뻘지역의 경우 사람이 들어가거나 압력수를 쓰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평주 국장은 화학적 방재방법이 필요할 경우도 있지만 자연은 가능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자연은 스스로 내부에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이 환경에 손을 대는 것은 오히려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태계가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평주 국장은 “생태계 복원은 단순한 방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원래의 기능을 찾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피해자 중심의 보도 필요
허베이 스피리트호 재난 사고는 그 규모나 피해,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컸기에 연일 언론과 정치권 등에 오르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대구한의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박동균 교수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의 언론보도 및 지역정치권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동안 한국 언론은 수차례에 걸친 재난사고 보도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원인을 끈질기게 파헤치기 보다는 책임자 처벌요구 보도에 더 중점을 둔다거나, 냉철한 문제해결과 재발방지보다는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치우쳤다는 것이다.

	사진1. 한남대학교 행정학과 김겸훈 교수 사진2. 대구한의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박동균 교수

또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아 사후대책의 실시 여부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박동균 교수는 이번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면 지적했다. 이번 재난보도에서는 무엇보다 부정확한 보도가 빈발했고 이는 피해지역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또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를 초기 사건 이름과 같이 ‘태안 원유 유출 사고’라고 부르는 것도 지적했다. 이러한 이름은 관련사건에서 가해자가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태안은 가장 큰 피해자일 뿐인데도 최악의 기름유출사고의 부정적 수식어가 돼버렸고 사람들에게 태안은 부정적 이미지로만 각인됐다. 이와 함께 언론은 극적이며 드라마틱한 미담에만 치중했다고 말했다. 박동균 교수는 “자원봉사가 피해복구에 엄청난 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며 “그러나 자원봉사에 대한 과잉보도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의 책임 소재 규명과 어민들의 생계문제나 보상문제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됐다”고 설명했다. 미담에 치중한 나머지 사고 본질과 재발방지 대책 등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지역정치권…위기ㆍ혼란 통합 못해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는 대통령선거 운동으로 분주하던 시기에 발생했다. ‘선거’라는 이슈하에 중앙당 차원의 공약이나 선거 캠페인에 중점을 둔 나머지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정치권의 독자적이고 실질적인 재난관리 활동이나 프로그램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번 기름유출 사고 이후 지역주민 내부에서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정치권의 주민들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활동과 역량이 부족했다.

토론에 참석했던 안양대학교 도시행정과 이호동 교수도 지역정치권의 역량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지역정치권이 중앙정치권에 호소하는 역할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특별법을 촉구한다거나 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언론뿐 아니라 지방 내에서 홍보의 역할을 충분히 했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스컴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충북이나 태안군 자체 내에서 홍보와 대응을 제대로 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난분야 전문기자의 필요성 대두
박동균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독자위주의 보도가 아닌 피해자 중심의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해야 하고 재난의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심층취재를 위해 재난 전문기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역정치권의 경우는 주민참여의 활성화와 공개 행정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의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지역주민으로부터 신뢰는 구축하고 있으나 지방정치의 중요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지는 못한 지역시민단체가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한다면 사회자본의 증가로 인한 위기관리 영역에서의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